정년퇴임을 하면서 나는 쉬지 않고 일하겠다는 공언을 했었다. 그러나 일을 찾는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반 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주일미사 때, 신부님께서 본당 주보를 창간하겠다며 일할 사람을 찾으셨다. 재직시 교지 편집의 경험이 있어 나는 서슴없이 나섰다.
그러나 즐겁던 나의 생활은 교적을 옮김과 동시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는 이 없는 본당은 너무나 쓸쓸하였다. 여기는 신자들의 친교를 위해 미사 후 성당 앞뜰에서 커피 등을 나눈다. 그러나 낯선 나에게 차 마시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천주교회가 새 신자뿐 아니라 전입자에게도 보다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고 절실히 느꼈다.
나는 떠난 본당을 자주 찾다가 빨리 새 본당에 정 들여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해당되는 단체를 찾아 가입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찾기 위해 나섰다. 판공 때, 용기를 내어 신부님께 간청을 하였다. 나이는 많지만 무슨 일이든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로부터 나는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의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 날, 뜻밖에 신부님의 전화를 받았다. 노인분과를 맡아 노인대학 설립 계획을 세워 보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그리고 시내 노인학교 등에서 자료를 찾았다. 자료가 있으니 학교에서 잔뼈가 굵은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설립 계획을 세우고 나니 이번에는 나에게 노인대학의 운영을 맡으라는 분부시다. 전입한 지 1년도 안 된 나로서 책임만은 옳지 않다고 굳이 사양했지만 결국 신부님의 뜻에 따랐다.
기쁨의 나날을 되찾았다. 신부님께서 앞에서 이끌어 주시니 힘들지 않았다. 나는 노인들의 선생도 되고, 아들도 되었다, 때로는 손자도 되었다. 일은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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