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철 베드로는 그의 아버지 유 아우구스띠노를 닮아 열심과 충성을 다하는 신자였기에 비신자도 다 알아줄 만한 아이였다.
유 베드로가 13세 때 박해가 일어나 그의 아버지와 여러 신자들은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1839년 7월에 관헌들에게 자수하였다.
재판관들은 유 베드로가 신자의 자식임을 알고 옥에 가두고 그 소년을 배교시키기 위하여 천만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베드로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하루는 어떤 형리가 구리로 된 대롱을 베드로의 허벅지에 처박아 살점을 떼어내면서 소리쳤다.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
『그러믄요. 이렇게 한다고 배교할 줄 알아요?』
이에 형리는 화젓가락으로 벌겋게 된 숯 덩어리를 집어 입을 벌리게 하였다.
『자요』하고 베드로가 입을 크게 벌리니 형리는 놀라 물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도 놀라서 입이 닫히지 않았다.
유 베드로는 온갖 고문을 받아 그 작은 몸이 상처 투성이에 뼈가 부러지고 살이 헤어져 떨어졌으나 늘 기쁜 낯빛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요즘 성당에 자꾸 가기 싫어진다.
그런데 내 나이보다 더 어린 아이가 이토록 고문을 받아가며 하느님을 믿는 것을 보니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이 아니라 개미 집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어린 신자가 옛날에 있었다는 것에서 자랑스럽게도 느껴진다.
그런데 어느날, 관원들은 베드로를 공공연히 죽이면 군중이 반발할까 두려워서 1839년 10월 21일, 형리가 옥 안으로 들어가 상처 투성이가 된 그 가련한 작은 몸뚱이를 움켜잡고 목을 노끈에 잡아매어 죽였다고 하는 대목에서 나는 힘이 쭉 빠졌다.
13세로 1839년 10월 21일 교수형…. 참으로 놀라워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죽었다니 너무 비참하고 원통했다.
왜 죄도 없는 우리 신자를 죽였는지 지금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상품을 타기 위해 독후감을 쓴 점이 너무 얼굴을 붉히게 만든다.
유대철 성인의 삶을 따르는 어린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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