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라 신부님은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국민학교를 소련에서, 중학교는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는 프랑스에서 마치고, 로마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분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의과대학에 들어갔다가「영혼의 의사」가 된 분이다. 기구한 운명의 떠돌이답게 사목 지침도 유사한 것이었다.
거구와 수염이 모세의 풍모를 연상시키는 신부님은 티모르 난민 2백 명을 캐나다에 정착시킨 후, 베트남 난민 1백50세대 7백 명을 이끌고 볼리비아에서 3년간 사셨다.
난민들이 살 집을 설계하고, 돌팔이 의사 노릇도 하였다. 남미에서는 야생말을 잡아 길들여 타고 다니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난민들이 살 만하자 신부님이 찾은 곳은 일본이었다. 한국 성인당에 계시면서 고약한 일본 관리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구슬려, 재일 동포들의 외국인 등록 갱신을 성당에서 할 수 있게 했다.
주로 한국인 밀항자들과 불법 체류하는 외국 노동자들의 아버지였다. 사목생활의 출발지 한국에서는 한창 구호품이 나와「밀가루 신자」들이 속출할 때『세례 받으면 1년 동안 구호품 못 받는다』는 절묘한 규칙을 만들 만큼 꾀 많은 분이기도 하다.
신부님이 한 번은 우리말로 말씀하셨다. 한 수도자가『아이구, 우리는 교황청에서 온 문서 같은 건 전혀 안 읽습니다』고 했다는 것이다. 동석했던 젊은 신부님이 조심스럽게 들릴락말락하게 여쭈었다.『신부님, 그와 같은 태도를 어떻게 봐야 좋을까요? 틀림없이 그럴 만한 까닭도 있을 텐데요.』그러자 쩌렁쩌렁한 신부님의 말씀이 방 안을 울렸다.『시끄럽다. 교황님 말 안들으면 천주교 신자 아니다』정직히 말해 그 신부님으로부터 그런 답을 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루한 사복 차림도 잘 어울리시는 분, 미사와 고백성사 만큼은 귀찮을 만큼 강조하시고 혼자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 생활 현장에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는 분, 갈 곳을 알리지 않고 훌쩍 떠나시는 분이라 지금은 어디 계신지도 모르지만, 이 신부님이야말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있었기에 배출될 수 있었던『철저히 가톨릭적이기에 철저히 복음적일 수 있는』사목자의 한 유형이 아닐까 싶어 독자들에게 선 보이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