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9월 20일 월요일 그날 만큼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언니는 아침 9시 단순한 종기 제거를 위해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야만 했다.
몇 번씩 의사 선생님께『선생님 큰 병은 아니겠지요?』라고 물었을 때 의사는 단순한 혹을 제거하는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면서『아주머니는 참 겁도 많으십니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누구나가 수술이란 말 자체에 겁을 먹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언니 만큼은 내심 마음이 개운치 못했다.
한두 시간이면 끝이 날 수술이 점점 길어지면서 우리 가족의 초조해지는 마음은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려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가 될 것이다.
그때 마침 수술실에서 의사가 나와 보호자를 찾았다.『암 말기이니 앞으로 6개월 정도 넘기기 힘들겠습니다.』
오곡이 무르익은 추석을 이틀 앞둔 우리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게도 자신만만했던 의사가 감히 사형선고를 내리는 재판관으로 변해버릴 줄이야.
나는 그때 언니의 얼굴을 아니 언니의 눈빛조차 마주하기가 힘들어 잠시도 병실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전혀 그 사실을 모르는 언니는 많은 방문객에게 연신 미소를 보냈고 그럴 때면 우리의 마음은 더욱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제 일 년이 흘렀다. 지금은 언니의 얼굴에서 예전 언니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말로만 듣고 신문상으로만 보아오던 소말리아 어린이의 모습보다도 더욱더 비참하게 말라버린 언니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일 년 동안 어머니는 피나는 노력으로 딸의 재생을 위해 헌신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우리는 분명 언니의 재생을 기대할 수 있었고 분명 언니는 많이 좋아졌었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갑자기 쇠약해져 버린 언니는 인제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영양제 주사를 놓기 위해 간호사들은 언니의 뼈밖에 남지 않은 팔ㆍ다리에서 혈관을 찾기 위해 주사 바늘을 여기저기 찔러본다. 결국 목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영양제와 피주사를 놓았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영안실에 모실려면 병원에 두고 그렇지 않으면 퇴원을 시켜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재촉한다.
우리 가족들은 지금도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기적만을 기다리며 언니를 위해 열심히 기도할 뿐이다. 오늘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다가 문득 언니를 모르는 많은 이들이 이 글을 읽고 화살기도라도 해준다면 분명이 언니는 기적처럼 다시 회복될 것 같아 한 걸음에 달려와 몇 자 적어본다.
어제 언니는 나에게『체칠리아, 이제 내 나이 38살이다. 겨우 이만큼 살려고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나 싶다. 그래도 나는 예수님보다는 5살을 더 살았으니 많이 살았다 그지?』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위로할 수도 없었다. 다만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주님께 순종할 수 있는 언니의 모습이 아름답고,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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