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에 박 신부님이 명월구에 오셔서 사제관을 새로짓고 초가집을 임시로 성당으로 사용했다 그 당시 본당 회장은 박창재씨였다.
그 당시 나는 매일미사에 참례를 했고 주일미사에 복사를 서기 위해 일찍 성당에 갔었다. 마침 주일이였는데 성당마당에서 박 회장님이 키가 월등하게 큰 분과 다정히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카가 육척이 넘고 골격과 얼굴이 마치 장군 같아 보였고 목소리는 우렁차게 둘렀다.
어린이들은 그분 방운룡씨를 목소리가 우렁차다고 방우뢰라고 불렀다. 뇌성과 같다는 뜻이다. 바로 이분이 군인으로 있을 때 나라를 빼앗긴 한일합방이 되니 군에서 물러나 잃은 나라를 다시 찾으려고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부모와 처자를 놔두고 북간도에 와서 독립군에 투신하였다. 박 회장도 같은 동네서 살다가 같은 때 부모처자를 두고 북간도에 와서 교우촌을 다니며 젊은이들을 모집하여 농한기에 군사훈련을 시켰었다.
그 당시 북간도 시골에는 신자들만 집단을 이룬 큰 동네가 많았다. 칠팔십 명은 쉽게 모집이 되었다. 1919년 3월1일 만세 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 전국 방방곡곡에 만세운동이 번졌다. 이에 일본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마구 살육을 하니 백성의 아우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감옥은 초만원이였다. 이런 난리통에 죽기를 무릅쓰고 많은 청년들이 북간도로 모여들었다. 독립군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을 확보 하였으나 총과 탄약, 중화기를 구할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런 때에 하느님의 도움이 있었다. 1차대전에서 소련군은 독일군에 패하고 다음에 레닌혁명군에 패하고 쫓기어 시베리아를 지나 만주로 몰렸다. 그 패잔군 중에는 체코군대도 있었는데(체코는 소련에 예속된 나라였다) 총과 탄약 기관총들을 팔려는 것을 독립군들이 알고 모조리 사들였다. 소련 패잔군들도 만주에 들어와 독립군에게 무기를 팔았다. 그동안 나무칼을 만들고 작대기를 총이라고 하고 메고 훈련하다가 진짜 총을 메어보니 용기백배 의기충천 하였다.
독립단에 지원자가 많이 늘었다. 북간도로 이민 온 이들의 소식에 일본군들이 불원간 북간도로 토벌대를 보낼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용정에 있는 일본영사관은 자기민족을 보호한다는 구실아래 독립군과 공산군을 잡아들이라는 것이다. 북간도 독립군이 화용현 천보산 명월구돈하현 등지에 있다는 정보를 한국에 있는 일본군에 누군가가 제보를 하였다. 1920년 가을 서울 용산에 있는 19사단과 함경도에 남아 있는 20사단에서 1만 명씩 2만 명을 진군시켰다. 때는 10월 초순이었다(북간도에서는 9월까지 추수를 마친다) 독립단 모든 단체는 농한기가 왔으므로 각 처에 흩어져 있는 독립군들을 화룡현 쌍투구로 총집합하게 하였다. 독립군의 장군으로서는 예순을 바라보는 김일성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있었고 그 외에는 30대ㆍ40대의 장군들이다. 김좌진, 이청정, 이범석, 박운용, 박창채씨 등이었다.
일본군 토벌대가 불원간에 북간도도 쳐들어 올 것으로 추측하였기 때문에 두만강 어느 길로 도하를 하는가에 대하여 서로 상의하였다. 도문과 상상봉 또 회령과 무산이 넷 중에 모든 장군의 의견을 들어 보고 결정짓는 이는 김일성, 김좌진, 홍범도였다.
결국 결론짓기를 용정이나 연길같은 도시를 토벌한다면 많은 인명을 살상하여 세계 여론에 부딪칠 터이니 이를 피하여 시골길을 택하고 시골에서 전투를 일본군들은 원할 것이고 무산과 회령서 두만강을 도하하여 쌍투구, 천보산 등지로 진출할 것이라고 결론을 짓고 회령을 도착할시는 홍범도 장군에게는 오랑캐 고개를 지키다가 습격하고는 도주하고 그 다음 고개에서도 습격하고 도주하면서 청산리 방향으로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홍범도 장군은 60명 정도의 부하를 거느리고 목적지로 향하였다. 방운룡씨와 박창재씨는 무산 방향으로 보내고 도하할때는 즉시 본부로 알리고 산이나 고개에서는 일단 사격하고 도주하면서 청산리로 유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부하 5~60명을 거느리고 무산 방면으로 떠났다. 쌍투구의 독립군 본부에서는 두 방면으로 일본군 토벌대가 도하를 하면 곧 알리라고 매일 정탐군을 파견하였다. 기다리던 중 회령 방면에서 먼저 토벌대가 도하중이라는 소식이 들어왔다. 쌍투구에 모였던 장군들은 부하를 거느리고 청산리로 옮겼고 지형을 정밀히 답사하고 진지를 구축하였다. 큰고개가 있고 산에는 나무가 울창하였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