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한 분이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다가 와서 들려주신 얘기 한 토막. 워싱턴에 있는 국립 박물관, 한쪽의 넓은 벽에 거대한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는 그 지도의 크기에 감탄하면서 우선 우리나라를 찾아 보았다. 동북 아시아의 작은 반도 대한민국. 거기에는 청동으로 만든 예쁜 사람의 머리 조각이 붙어 있었다. 늘보는 우리의 지도이지만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보는 감회는 깊었다. 그는 감개무량함을 느끼면서 넓은 벽면에 그려진 세계 여러나라를 천천히 살펴 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 사람 머리 모양의 조각이 붙어 있는 위치가 좀 이상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쪽이 많고, 유럽과 미국은 적었다. 그는 이상하다 싶어서 그 위쪽의 제목을 읽어 보았다. 그것은 「세계 미개인 분포도」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다. 겨우 2백여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이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사람을 미개인으로 취급하다니 찬연히 빛나는 우리의 문화. 신라의 불교, 고려의 한문문화와 자기, 조선의 유학,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의 창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외적의 침입에 용기와 끈기로 대처해 온 슬기로움… 미국이 우주선을 쏘는 재주가 있다하나 어찌 우리를 미개인으로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했다. 미국인들만 욕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들이 우리를 그렇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노하기 전에 겸허한 자세로 우리 스스로를 반성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체로 공중도덕을 잘 지키지 못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도 함부로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는 담배 꽁초를 길거리에 버리기까지 한다.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이 교통신호를 무시하기도 하고, 차 안에서 피우던 담배를 차창밖으로 집어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버스나 택시를 타면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모두 박탈당하고 만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는 물자를 아끼는 정신이 부족하다. 내 것 내가 쓰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것」이기 이전에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고 풍부하여 금수강산으로 불리우던 우리나라다. 그러나 산은 허물어지고 물은 더러워져서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는 이제 버릴곳이 없다.
이 밖에도 우리가 반성해야 할 일은 많고도 많다. 미국이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비꼬는 것도 우리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영광스러운 역사의 건설은 덮쳐 오는 도전의 물결에 얼마나 슬기롭고 용기있게 응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 아놀드 토인비의 말을 깊이 음미해 보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미개인」의 오명을 씻을 그 응전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어린이들임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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