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거미를 아십니까.
그 작은 거미의 몸뚱이엔 수십개의 발이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쉬임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거미 전문가의 설명의 의하면 그 발-정확히 말하면 다리라고 해야겠지요- 에는 거미 특유의 촉수가 달려 있어서, 앞의 사물들을 감지하기 위하여 그렇게 흔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발을 흔드는 모습을 카메라로 확대해 놓으니 그렇게 즐거운 모습으로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이 세상에 발딛고 있는 것이 너무 즐겁고 기뻐서, 온몸으로 춤추고 있는 것 같은 것입니다.
거미의 그 즐거운 몸짓을 떠올리면서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에게서는 오늘도 답장이 없지만, 그러기에 저는 또 다시 쓰는 것입니다. 거미의 춤은 사실 자기를 버리는 자의 그것이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말하자면 한 다리를 들때 다른 다리는 앞의 사물을 더듬습니다. 앞의 사물을 더듬기 위해서는 다른 다리는 땅을 버리고 공중에 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순간 버림의 동작이 그 아름다운 생명의 춤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저도 순간 순간 『버려야겠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것이 잘 안됩니다. 제가 끊임없이 불안하고, 공포스럽고, 골치아프고 하는 이런 것들이 실은 「버림」을 실천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말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숲이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질들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사소해지고, 왜소해지며, 하찮아집니다. 생명마저도 이 물질의 숲 앞에선 별 의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 지상의 어느 구석에서 어떤 한 생명이 사라진다 해도 거대한 물질의 숲은 꼼짝하지 않습니다
물질이 생명마저도 제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생명들이 물질에 속하려고 했던, 근대이후의 정신적 습관에서 기인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은- 아니 개인은 노예화, 또는 물질화의 길을 걸어 왔으며, 지상의 주인이 아닌 손님의 자리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잘 버리는 일- 현대의 숙제인 것이 분명합니다.
잘 버리는 일이 잘 얻는 길임은 분명합니다.
저의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이 물질화의 습성들- 당신이 버렸듯이 버리게 하십시오 완전한 버림 위에서만 하나의 큰 창조가 일어설 수 있음을 알게 하십시오.
모든 현재는 과거를 하나씩 버리며 서 있음을 뼈속으로 이해하게 하십시오.
모든 꽃은 열매를 버린 위에 일어선 것임을 깊이깊이 꿈꾸게 하십시오.
이제는 가을입니다. 완성되는 버림의 계절입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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