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의 나뭇잎은 여전히 녹색으로 광택과 더불어 금속성을 견지하고 있으나 열매는 곱게 루비빛으로 윤기를 더하며 나날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새소리 보다는 풀벌레 합창이 숲에 그득한 9월이 선뜻 다가오면 마치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의 심정으로 게으름과 망설임으로 미루었던 할 일들을 서두르게 되며 마무리할 것들을 챙기게도 된다. 일상사에 쫓기다가 무심히 자연에 시선을 주면 모든 것들이 어김없이 바뀌고 변화됨에 새삼 경탄케 된다. 묵묵히 자기 몫을 수행하는 자연 현상은 그 자체가 조화이며 질서를 지니고 있는 양 보여진다. 자연에 시선을 돌리고, 침묵하며, 내면의 세계에 귀기울이게 하는 계절을 소유한 우리는 축복 받은 민족이란 생각도 든다.
세상은 자못 시끄럽다. 소음투성이다. 자연이 내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와 달리, 우리네 인간이 내는 각종 소리는 소음에 가까웁고 소란스럽기만 하다. 이릴때일수록 쓸데없는 잡음과 소요로 부터 귀를 막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밝게 보이듯, 소음 속에 내면의 소리는 더욱 우렁차고 청신하며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는 맑고 진실하며 참되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할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않는 귀를 때리는 너무나 쓰잘데 없고 소용없는 온갖 것들에 길들여진 우리의 청각을 씻기우는 작업부터 우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침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연을 향해 열려진 마음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맞이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는 문명이란 미명하에 소음도 많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소리가 가득한 공간이다.
남들과 더불어 함께가 아닌 혼자만의 침묵, 스스로 소극적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특히 외부에는 두드러질리 없다. 그것은 착하고 성실하게 매 순간을 사는 많은 이들이 눈에 잘 뜨이지 않듯이, 우선 자신이 맑고 투명해야 세상을 제대로 본다.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수면처럼, 티끝없는 거울에 모든 것이 제대로 비추이듯, 침묵 속에 비추인 스스로의 모습은 둘이 없는 나, 우주를 지니고 있는 나. 시간과 공간 모두를 통해 무한대가 분모인 분수의 분자로 존재하는 나, 하느님이 깃들어 계신 나. 존재 그 자체는 인간의 선택과 별개이기에 우리의 존재는 신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존재에 외경케 된다. 아울러 우리의 삶은 눈부시게 되고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굳이 20세기 말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나 이즈음 사회에 팽배한 여러 소음중의 하나로「인생은 즐기는 것, 삶은 즐기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라는 찰라적 향락주의가 십대로 부터 노년층까지 폭넓게 확산되어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 선조들도 일찍이 중국 문헌에 언급되어 있듯 술 잘 마시고, 노래 잘 부르고, 춤을 즐긴 낙천적인 민족이었다. 꾸밈없이 해맑고 명랑하고 밝고 환한 표정이 우리 민족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향락적 양상과 낙천성은 구별을 요한다.
이 계절 가을에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은, 가을에 주어진 지나온 나날에 충실해 수학의 즐거움을 노래 부를 수 있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것은 크리스찬 모두가 「행복한 이들이 되어야 한다」는 진복팔단의 선언과도 통하는 것이다. 침묵을 통해 인식된 진리의 소리에 매료된 우리의 기쁨은 소란스럽지 않고, 영원한 것에 목표를 두고 있기에 결코 찰라적이 아니며, 그윽함과 거룩함을 지닌 참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헤아려 보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한 둘이 아니다. TV 코미디 프로를 통해서도 히히덕 거리며 곧잘 웃는다. 웃음도 전염이 강한 것이기에 혼자가 아닌 여럿이면 더욱 배가되고 고조된다. 잠시후 웃음이 식고 경박스러움에 허망함마저 들기도 한다. 내용과는 별개로 분위기에 취해서 웃음에 동참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된 기쁨은 마치 미소처럼 은밀하고 조용하다. 마음과 정신이 함께 기쁘다.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시각만이 아닌 청각을 통해서도 본다.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서 가을을 읽는다. 삽상한 바람소리, 철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낙엽지는 소리까지 듣기도 한다. 청각이 아닌 마음으로 듣는 가을의 소리도 있다. 성장을 멈춘듯 보이나 속이 꼭꼭차 실해지는 곡식과 과일들, 꽃보다도 아름다운 색조로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 이들이 전해주는 것은 가을은 성장 보다는 성숙이 제격인 시절이란 점이다. 우리가 이 계절에 주어진, 우리들 기쁨의 본질은 바로 성숙에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은 쪽정이가 아닌 알곡이 되는 것이며 새로운 씨앗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몸담고 있는 공간 전체가 성숙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결실과 더불어 나뭇잎이 지는 것도, 스스로를 비우고 공간을 넓힘도 성숙의 또 다른 모습이다. 지금부터 서둘러야한다. 이만큼 와 있기에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시간의 흐름만큼 성장했기에 성숙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청각으로 들을 수 없는 가을의 소리는 성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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