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성은 옷입음새부터 달랐다.
손에 얹으면 한 줌 될까 말까한 최고급 낙타천으로 된 검은 외투, 코끝이 동그란 무릎까지의 부츠, 반지며 목걸이며 몸에 지닌 모든 것은 멋으로 가득차 있어 보였다. 새하얀 얼굴과 커다란 눈은 내가 어릴 적 부터 동경해 마지않은 비너스상을 꼭 닮았었다. 귀하고 귀하게 자란 티와 스물하나 둘을 갓 넘긴 아가씨티는 품위와 신비를 함께 지닌 듯하였다.
변사자 인수증에 서명을 하면서 나는 한 번 더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여쁘다 귀엽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세상에 이만큼한 여성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만한데도 왜 죽었을까도 싶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터질듯 풍요로운 가슴에 담은 사연은 알 수 없으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게 먼저 왔으면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줄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대구의 겨울은 꽁꽁 얼었었다. 온 나라에 소문난 추위었지만 그해 겨울은 별났다. 그래서 그녀도 꽁꽁 얼어 살아서의 모습에 한줌 흐트러짐이 없었다.
인수증을 손에 든 형사 한 분이 수성못가의 호텔 특실 손님인데 뒷산의 소나무에 기대어 죽어 있었다 하였다. 신분증이 없어 신원을 알 수 없으며 검찰에서 병원 냉동실에 보관을 부탁한다는 사연이었다. 변사자라고 반드시 부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고발이나 범죄의 의심이 있을 때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 참한 아가씨가 칼로 베여 오장육부가 갈기갈기 찢겨지기보다는 내가 모셔 가야지 그리고 애타하는 부모나 친지를 찾아 주어야지 생각 하였다.
사체실의 기사가 더운물로 목욕을 시키고 알콜과 페놀이 섞인 방부제를 주입하였다. 죽은 사람인데도 꼭 산 사람같다고 말했다. 내가 부탁한대로 소중하게 처리하고 하루 이틀을 기다렸다. 이만한 여성이니 곧 소식이 오겠지 생각했다. 검찰청의 R검사에게도 연락하였다. 내가 『그 여성은 잘 있습니다』 하니까 그 젊은 검사는 농담하지 말라고 정색을 하였다. 무슨 한인지 눈을 감지 못하고 커다렇게 뜬 눈으로 숨진 아가씨를 위해서 몸달아하는 것은 나뿐인가? 달이 가고 그 해가 다 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해가 바뀌어 R검사도 원주지청으로 전근가게 되고 K형사도 반장이 되어 부서가 바뀌었다.
사체 보존법에는 의과대학에 기탁된 시신은 2개월을 경과하도록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학생들이 사체 해부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신학기가 다가오자 이 여성 사체를 어떻게 하나를 두고 회의를 하였다.『교수님이 그토록 애쓰셔도 소식이 없으며 올해는 여성 사체도 모자라니 실습용으로 해야겠습니다』고 주장한다.
빌다싶이해 그 해를 넘기고 또 신학기 맞기를 두 번인가 세 번을 하다가 어느해 수수께끼의 이 여성을 해부하고 해마다 하듯이 장엄한 제를 지내고 고이 묻었다.
×××
사건은 주로 겨울에만 일어나는 것인가? 그해 겨울도 눈이 많이 오고 매섭게 추웠다. 한나절이 지난 시간에 경찰관을 앞세운 육군장교와 몇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저의 모친을 찾으러 왔습니다』이러저러한 모습에 옷입음새는 그러저러 하다는 것이다. 나는 단번에 재작년 겨울 행로사망자로 시내 모파출소에서 데려온 60대 후반의 노인이 떠올랐다. 털실 무늬 스웨터를 곱게 입고 이웃에 나들이 갔다 길을 잃어 그대로 동사한 듯 한 사람이다. 장교가 내보이는 신문광고엔 한 10년은 젊어보이는 그 분의 사진이 있었다. 『회갑기념 사진입니다』한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분에게 가족이 없다니…. 얼마나 반가운지 서둘러 시체보관용 체스트를 열고 시신을 모셨다. 옛날 여학교를 나온 똑똑했던 분이지만 근자에 노인성 치매로 식구들이 애를 태웠다 한다. 전속간 아들을 따라 김해에서 살다가 실종 됐다고 한다. 6ㆍ25때 피난 나와 대구 양키시장에서 장사하며 아들 딸 키운 터전이라 옛날 살던 곳을 헤매인 듯하였다. 깨끗하게 보관된 시신을 보는 순간 이 효자대령과 식구들은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애타게 찾아헤맨 지난 세월, 기가 차는 고생과 막막하였음이 막을 내리는 순간인지라 이 체면 저 체면이 무슨 소용인가. 이웃방의 교수들이 무슨 사건이 난 줄 알고 달려왔으나 난 이 소란이 싫지 않았다. 모친을 끌어안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육군대령을 보고 있으려니 오만 생각이 가슴을 오고 갔다. 의학공부를 위한 실습용 사체를 꼭 임자 없는 불쌍한 사람들로만 해야 하는가? 왜 다른 나라처럼 앞다투어 시신기증운동이 일어나지 않는가? 아무리 동양과 서양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철학이 다르다 하여도 이 광명천지에서 사인규명을 위한 해부를 왜 두벌죽음이라 펄쩍 뛰는가?
「모든 물질은 흙으로, 영혼은 이를 주신 주님께로」의 구약말씀처럼 죽음을 다른 부활로 생각않는 참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정신은 기쁨과 희망이다. 보통의 기쁨은 pleasure나 rejoing이지만 하느님으로 인한 기쁨은 joy라 한다.
joy에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남에게 베푸는 기쁨이 있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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