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어느 본당에서 첫 영성체 교리가 있었다. 예수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는 자격을 얻기 위해 모여든 꼬마들은 육십여 명이었다. 예비소집 때 어머니들에게, 묵주기도를 잘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졌다. 교리를 시작하기 전에 찰고부터 해서 못하는 꼬마들은 떨어뜨린다는 경고도 덧붙여졌다. 한 꼬마의 어머니는 그 자신이 묵주기도를 배워야 하는 형편이어서 그 할머니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삼복더위에 놀 틈도 주지 않고 이틀 동안 엄격히 가르친 끝에 곧잘 하게 되었다.
교리가 시작되기 전날에 있었던 찰고에서 여섯 아이가 떨어졌다. 그 꼬마도 그 중의 하나였다. 주일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는 것. 기도를 어머니와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에다가 수녀님 앞에서 긴장하여 그토록 애써서 익힌 묵주기도까지 틀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이다음에 다시 오라는 수녀님 판정에 꼬마는 기가 팍 죽었고, 그 한심한 부모는 주일에만 겨우 나가던 교회에서 아주 발을 끊게 되었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관심을 일깨우기 위해 이례적으로 교리로 들어가기 전에 시행한 그 찰고는 꼬마들을 부모의 무관심을 벌하는데 희생제물이 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교회는 세속과는 가치관이 다른 곳이다. 세속의 학교에서는 잘하는 아이들을 뽑아 가르치지만 교회에서는 반대로 못하는 아이 안하는 아이들을 뽑아서 가르쳐야 한다. 부모가 가르치지 않는 묵주기도를 첫 영성체 교리를 통해 가르쳐야 하고 부모의 무관심으로 안 다니고 있는 주일학교에 다니게 만들어야 한다. 기도에 성의가 없는 부모를 기도에 끌어들이도록 아이들의 신앙의 기초를 다져 주어야 하는 기회가 바로 첫 영성체 교리가 아닌가 한다.
예수님은 아흔 아홉의 의인보다 한 사람의 죄인(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을 가르치고 다독거려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신 사랑의 봉사자이시다. 부모의 무관심과 무성의로 죄인이 되어 교회로 부터도 버림 받은 여섯 명의 꼬마들이 어느 시기에 시한부 종말로 같은 구렁에 빠져들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세속의 원칙과 방법을 추종하기보다 예수님 사랑의 원칙과 방법에 충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류제상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소설가 이석봉씨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