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연길을 떠나 용정에서 아침을 들고 모두의 소원인 백두산 천지를 보기위해 포장도 안된 길을 8시간이나 달려서 장백산 입구에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던 지프차에 4명씩 나누어 타고 백두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울창한 산림길을 달리면서도 「천지를 볼 수 있을까」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걱정을 했다.
정상의 일기는 아무도 예측을 못한다 했다. 잘 닦아놓은 아스팔트길을 굽이굽이 수없이 돌고 돌아서 마침내 정상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풀 한포기 볼 수 없는 화산 자갈밭이었고 스치는 바람은 차가웠다.
천지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은 한발을 내디디면 미끄러질만큼 군데 군데 얼어 있었다.
오르다가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찔한 현기증이 났다.
천지를 보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힘겹게 올라간 정상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옆사람도 분간을 할수가 없었다. 뚫어져라 안개속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타까웠다.
안개가 걷힐때까지 잠시 기다려 보자는 일행들의 말대로 기다렸지만 끝내는 보지 못하고 짙은 안개속에서 나올지 안나올지 모르는 사진을 몇장 찍었다.
그래도 백두산 천지까지 올라왔다는 감동을 안고 애국가도 불렀고 만세 삼창도 했다.
이북의 형제자매를 위한 기도도 잊지 않은 신부님의 뜨거운 배려에 우리 일행은 목이 메였다.
비포장길, 털털거리는 차를 타고 이정표도 없이 물어 물어 왔는데 짙은 안개에 가려서 천지를 보지 못하고 하산을 하게 되는 마음은 착잡했다. 천지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마음은 울고 싶었다.
그날은 더운물이 나오지 않고 찬물만 나오는데 뼈가 저리도록 차가운 산물이라 세수도 못하고 자는둥 마는둥 밤을 새웠다. 다행히 아침에는 더운물이 나와서 목욕을 했다.
식당으로 나가니 날씨가 눈이 부시게 화창했다. 천지를 보고 왔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일행간에 찬반이 오고갔다. 천지정상의 날씨는 알수가 없으니 꼭 볼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것, 희망자만 가기로 하고 우리 네사람은 용기를 내어 두번째 도전을 결심했다. 모두다 연로하신 분들이지만 용기와 패기는 젊은이 못지 않았다.
장백산 입구에서 지프차에 오른 우리 네사람은 묵주알을 굴리며 간절한 기도를 했다.『오늘은 꼭 천지를 보게 해주소서…』
창밖에는 찬란한 아침 햇살에 울창한 나무들이 더욱 푸르렀고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작아지는 나무들, 군데 군데 남아있는 얼음들, 어제는 보지 못했던 고산의 풍경이 새롭게 시야에 들어왔다.
지프차에서 내려 천지를 향하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날씨는 구름 한점 없었다. 정상에 오르던 순간 『와!』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웅장한 산 그 밑에 남색의 신비한 물빛이 아침 햇살에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토록 설레이던 심장도 잠시 숨을 죽였고, 나는 말없이 물빛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엄숙하여 옷깃을 여미고 우리 일행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볼수록 신비로운 물빛이 신기해서 보고 또 보고, 하얀눈에 웅장한 산 그리고 파아란 하늘, 커다란 감동이 온몸을 휘감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수없이 카메라에 담았지만 그래도 아쉬워 좀더 머무르고 싶었다. 조그마한 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하산을 기다리는 지프차를 향해 내려오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고산지대에는 보라빛 예쁜 풀꽃이 바람에 하늘거리고 능선 중턱에 서있는 외로운 비석하나가 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어느해 눈사태에 순직한 이곳 기상대 관측소소장의 묘지비석이라고 안내원이 일러 주었다.
지금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의 얼굴이 하나 둘 자꾸만 떠올랐다.
이토록 신비한 감동을 함께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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