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 제목을 얼핏 보면 말인지 말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짧게 읽으며 타는 말(馬) 이 되고 길게 소리내면 하는 말(言語) 이 된다.
이렇듯 언어는 목청을 울려서 내는 소리를 입모습이나 혀의 위치를 요렇게 저렇게 바꾸고 굴려서 만들어지는 것 외에도 홀소리(母音) 의 길고 짧음에 따라서도 뜻이 달리 나타나게 되어 있다. 말하자면 우리들이 일상에서 쓰고 있는 말 또한 일정한 약속과 규칙에 의해 통용되고 있다.
그러니 서로간의 신의와 언약을 지켜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철저하게 언어에 관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 이유는 결국은 언어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일이란 말과 모래라는 말이 같을 수 없듯이, 성인(聖人)과 성인(成人)이 같을 수 없다. 성스러운 사람을 이를 때는「서엉인」이라고 길게 말을 하여야하고 다 큰 사람을 가리킬 때에는 짤말하게「성인」이라고 소리내야 한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이들을 각각「성:인」과 그저「성인」으로 가려서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런 발음상의 차이를 그대로 눈 감아버리거나 모른체하고 두 단어를 서로 뒤바꿔 사용하는 일이 예사이다.
또「주님께 빕니다」라고 기도를 올릴때의「주」는 짧게 그리고「빕니다」는 짧게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비입니다」하고 길게 넉넉하게 발음을 하여야만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법니다. 다행히 대화에서 앞뒤 말의 흐름을 새기거나 책에서 앞뒤 문맥을 가려보면 길게 소리내거나 읽어야할 낱말을 짧게 소리내거나 읽어도 그뜻을 알아차릴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러한 잘못은 우리들이 못배웠거나 몰라서라기 보다는 따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어찌보면 별로 나무랄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제대로 다듬어지고 지켜질때 비로소 좋은 것을 얻게 되고 큰 일을 이룩하게 된다.
현대사회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산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또한 많은 힘을 들이고 있다. 산학(産學) 이라는 말이 학산(學産) 이라는 말보다 어감이 좋아서인지 굳어진 말로 상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러다 보니 생산품의 품질향상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그러기위한 많은 투자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마땅하고 잘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뜻이 높아서 좋고 의욕이 돋보여 반갑기는하나 그러한 뜻과 의욕이 디디고 서있는 기초가 헌술하지 않나 하는 기우를 떨어칠 수가 없다. 산업계는 고사하고 학술계에서 조차 통용되고 있는 용어가 반드시 제대로 다듬어졌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도 아니요 독일어도 일본어도 아닌 그러면서 우리말도 아닌 야릇한 말들이 함부로 통용되고 있다. 손쉬운 예로 자동차 타이어 터진것을「빵구」라 이르고 자동차 앞에 달린 완충판을「밤버」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각각「펑크」와「범퍼」로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그것도 각자가 평생을 두고 몸바쳐 일하는 직장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되풀이 사용하는 말을 정성껏 배우고 익혀 바르게 구사하여야 하지 않을까. 만일 교단에 선 선생이나 텔레지전에 나온 논객(論客) 이「가르치다」와「가리키다」를 가려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영어의 teach와 indicate를 가리지 못하는 격이 된다. 외국어인 영어의 실력이 그정도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말에 대한 무신경이니 무관심은 별탈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이는 분명히 기이한 논리이며 이상한 너그러움이다. 한술더떠「아르키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러한 단어는 아예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또 한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있다. 요즘 어린 아이들은 중학교는 고사하고 국민학교 (사실은 이 말도 일제의 자재로서 소학교로 고치는 바람직하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 한글자모와 엉뚱하게 다른 서양어의 알파벳을 배워서 제법 훌륭하게 발음한다. 이는 매우 진취적이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우리말을 익히면서 뜻을 바르게 다져야 하는데 그저 부모나 형제 아니면 친구들과 사귀면서 말을 몸으로 배우고만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있다. 물론 학교에서 낱말의 뜻을 가르치고 좋은 우리글을 외우고 또 익히게 하고 있는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언어의 핵심이 되는 얼과 그 얼이 제대로 드러나게하는 발음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할 때가 많다. 그 좋은 예로 일상대화에서 낱말의 장단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자체가 선진국 언어처럼 몇백년 두고 깊이있게 지속적으로 연구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독일어에서는 길게 소리나는 모음을 나타내기 위해 모음 다음에「h」자를 삽입하고 있으며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자기나라 자모에는 있지도 않는 작대기처럼 생긴 부호를 달아 길게 발음하도록 유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것은 모든 모든 분야에서의 두번쨰의 도약이 아닌가 한다. 이를 위해서는 너무 늦기전에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하는데 특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을 정리하고 개발하여야 할것이다. 이미 연구된것도 다시 연구하여 더 정확하게 다져야 하며 그것을 열심히 배우고 또 가르쳐야 한다.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는 간단한 말 하나하나에 더 정성을 들일 때 모든 뜻이 제대로 이루어 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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