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난국으로 표현되는 최근, 제반문제의 근원을 따지면 결국 인간교육이라는 문제에 모든 것이 걸린다. 결국 사람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올바로 크지 못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이 반듯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고 욕심이다. 겹겹이 쌓여 무엇이 문제이고 또 아닌지를 알아낸다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진 오늘, 우리에겐 사람 기르는 문제를 심각히 되짚어 보아야 할 의무가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기르는 사람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승 자체가 문제 덩어리라는 것이다. 가정과 부모라는 스승, 사회와 이웃이라는 스승, 학교와 선생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스승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스승다운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스승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것이 보다 옳은 말일 것이다.
인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학교와 선생을 나무라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가 인격 도야, 인성교육의 장이 아니라 시험과 입시를 위한 준비 도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의 인성교육이 잘못됐다고 학교를 나무라는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총체적 난국은 총체적으로 잘못된 사람 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교육을 맡아야 할 가정이, 그 교육을 심화시켜 주어야 할 학교가, 또 그 교육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사회가 모두 한 덩어리로 잘못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잘못되고 있다고 한탄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성수대교를 아이들이 놓았을 리는 만무하고 유람선을 청소년들이 관리하고 운행할 리는 도무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우리의 문제는 기성세대라고 불리우는 우리 자신에서부터 그 시작을 찾아내야 한다. 불신을 가르친 것도 우리이며 이기심을 보여 준 것도 우리 자신이며 거짓말과 왜곡으로 진실을 가려 버린 것도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탐욕과 눈가림 적당주의도 다름 아닌 우리 기성세대의 모습이었다. 수없이 태아를 살해하면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도 외국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자 삶의 선배인 우리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항간에 나도는 소문처럼 혹시 지하철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과정대로라면 이 또한 전혀 터무니 없는 염려가 아니기에 국민들은 더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의 관행이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정부 행정 당국과 전체 공직자들의 정신적 혁신 없이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뼈 아픈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이번 만큼은 우리 국민들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느 누가 아닌 바로 내가, 내 가족이 온통「부비트랩」으로 무장된 것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국민 모두는 결코 오늘의 이 비참한 아픔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에겐 또 튼튼하고 건강한 미래를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줄 중요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가 잘못 놓여진 주춧돌 위에 위험하게 서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앞서의 지적대로 정부 행정 당국과 공직자들의 참회 어린 반성과 정신적 혁신이다. 나라의 주춧돌을 다시 놓는 이 역사적 과업에서 그들은 우선적 책임이 부과된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시급히 필요한 것은 지도자급 인사들의 대오각성이다. 명예로운 직책에 있거나 권력을 행사하고 있거나 또는 막강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 재벌가들, 그 누구라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오늘의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굳이 서열별로 따지자면 지도자급 인사들에게 우선한다는 사실은 이미 모든 사건의 결론이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 역시 간과할 수가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현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방치한 방관자이며 공범자들인 것이다. 불의와 부정의가 판을 치고 바른 길보다는 옳지 못한 길임을 알고서도 지름길을 선택한 우리 모두 역시 책임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의 책임은 논하면서 평신도들의 책임을 지나칠 수가 없다. 우리 평신도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신앙인은 그 성격상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인, 그리스도가 열어 주신 신앙인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평신도들은 반드시 지도자급에 속한 사람들이어야 마땅한 일인 것이다.
또 다시 평신도 주일을 맞는 우리 평신도들은 막중한 책임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또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사는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길을 냉정한 눈으로 점검해 보아야만 한다. 과연 나는 진정한 의미의「평신도 그리스도인」인가? 아직도 자신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해 뒷전에서 불평만 하고 있는 평신도는 아닌가?
내일의 교회 주인인 젊은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밝고 건강한 교회를 물려주기 위해, 오늘 평신도들은 보다 씩씩해질 필요가 있다. 더욱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공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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