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난 충격적인 살인사건들로 인하여 우려와 염려의 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 전체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듯한 참담한 느낌이 들어 우리 마음을 무겁고 우울하게 한다.
재산 상속을 받기 위해 부모를 무참히 칼로 찔러 살해하는가 하면, 담뱃값도 못 번다고 병든 아버지를 때려 죽이는가 하면, 자신들의 가난한 처지를 가진 자에 대한 앙갚음으로 해소하기 위해 살인공장까지 차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가 하면, 가정환경을 비관한 나머지 소대장ㆍ중대장을 쏘아 죽이는 사병이 있는 이 한심한 세태와 도덕성의 상실에 우리는 아연해 할 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들 나름대로 이런 사회병리현상에 대하여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하기도 한다. 야당 의원들은 총체적 위기라며 내각 총사태를 요구하고 대통령의 국가 관리능력이 문제라고 질타하고, 사회 기강이 해이해서 그렇다고 정부를 몰아붙이며 한결같이 정치적 이슈로 삼으려고 한다.
또 어떤 학자는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하고 그 중에는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의 문제에까지 언급하는 분들도 더러 있지만 그 목소리는 적은 편이다. 모두들 그 진단에는 그 나름대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접근에는 이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의 공통된 사항은 그들이 자란 가정 환경이 정상적이지 못했고 불우했거나 비록 돈은 있어도 애정이 결핍된 가정에서 자랐다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원만한 가정에서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정상적인 인격 형성을 하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1952년 스페인에서 젊은 노동 사제인「가브리엘 칼보」신부님께서 문제 아동들을 돌보시면서 이들 문제 아동들의 뒤에는 문제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였다.
그는 문제 아동들의 근본 치유책으로 원만한 가정을 먼저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원만한 가정을 세우려고 혼인성사의 참 뜻대로 살아가는 부부일치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메리지엔카운터(ME)」운동의 시발이 되었고, 지금은 세계 91개 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활활 불타며 번져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ME운동이 들어온 지 18년이 되었고 각 교구별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각 본당 차원에서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본당 밖의 이웃에까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알리는 사도적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또 교회가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우리 사회를 살리는 길은 바로 이 운동을 더욱 열심히 확산해가는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운동은 원래 평신도운동이긴 하지만 혼인성사와 신품성사의 만남(엔카운터ㆍEncounter)과 쇄신에 의하여 교회의 모습으로 이웃에게 다가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시대의 징표를 살펴보며 향도적 역할을 해왔다. 70년ㆍ80년대에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외치며 이 사회에 끼친 공헌은 참으로 크다. 이제는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를 위하여 새로운 목자적 모습을 보일 때라고 믿는다.
금년은 UN이 정한「세계 가정의 해」이기도 하다. 이제 달력이 두 장 밖에 남지 않은 채「가정의 해」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지만 왜「가정의 해」로 정했는지, 또 가정의 해를 제대로 보냈는지 한 번쯤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금년 정월 초하루 교황 성하께서 제27회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발표하신 담화문에서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계신다. 『모든 가정이 평화 속에 살아가며, 평화가 가정에서부터 온 인류 가족에게로 흘러넘치게 하소서! 이는 세계 가정의 해를 시작하며 그리스도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신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에페 3, 15) 하느님께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입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다. 그 뒤 사순절 담화문에서도『가정은 사랑에 봉사하고 사랑은 가정에 봉사합니다』라는 주제를 갖고 말씀하셨다.『가정은 우리가 형제적 삶 곧 사랑과 연대성을 지닌 삶을 여러 모양으로 실천하고 그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첫째 장소요 으뜸가는 곳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세계 가정의 해를 다시 한 번 환영하고 교회는 어느 곳에서나 가정의 해의 행사에 협력하시겠다고 다짐하셨다.
우리 주교단도 3월 19일 성요셉 대축일에「사랑ㆍ생명의 공동체 가정을 위하여」라는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사랑과 생명의 가정 공동체 건설을 위해 모두 기도하고 투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회는 지난 10월 9일 전국 가정대회를 갖고 10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인 가정의 중요성과 그 주요 권리들을 재인식하면서 먼저 우리 자신이 도덕성 회복과 가정의 성화를 실천하기로 다짐하였다.
무너져가는 가정 공동체의 재건설이라는 시대적 요청은 금년 한 해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찍이 1968년 7월 25일 성야고보사도축일에 발표된 교황 바오로 6세의「인간생명」(Humanae Vitae) 회칙의 가르침과 1981년 11월 22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가정 공동체」(Familiaras Consortio) 회칙의 가르침에 따라 이 사회를 위해 가정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우리 교회가 앞장 서야 할 때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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