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육이오의 어려움을 겪은 후 역시 어렵게 월남하셨던 한의사이신 시아버님의 도움을 받아 부산의 수정동 산비탈에 처음으로 아담한 집을 장만했습니다. 월남후 남의집 셋방을 전전하다가 집을 사들였을 때의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조금씩 불려서 세번째로 사들인 집은 구덕산 기슭의 동대신동 주택가였으며 그리 높은 지대도 아닌데 저 멀리 부산 앞바다를 바라볼수 있는 꽤 넓고 별 좋은 집이었습니다. 긴장의 연속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살다가 이제는 무서운 고생길에서 아슬아슬하게 살다가 이제는 무서운 고생길에서 벗어났으며 이대로만 간다면 노후까지 보장이 되리라는 안도감 속에 서서히 나태해질 무렵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기초 없이 모래위에 세워졌던 이때 까지의 우리 삶의 터전이 거센 비바람에 송두리째 무너저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도 큰 충격속에 어리둥절하다가 사태의 흐름의 심각성을 알게되면서 슬픔과 좌절에 허우적거리던 어느날 저녁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마주않아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 속에서 회오리 바람 같이 무언가 빙글빙글 치솟아 오르더니 목에와 멈추면서 숨이 막혀 견딜수가 없는 무서운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육신적인 통증뿐만 아니라 걷잡을수 없는 불안감이 몸둘바를 모르게 휩쓸려 와서 병원으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주사를 맞고 기운이 떨어지면 그 증세는 계속 나타나 두려움 속에서 이 병원 저 병원 뛰어 다녔으나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 증세가 일어나면 마치 쇠사슬로 나의 목을 묶어 지옥문 앞에 세워놓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더욱 불안해졌습니다.
이즈음 이전 부터 가까이 지내던 남편의 친구분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고해 왔습니다. 그분께선 그 이전에도 간혹 천주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으나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흘러 넘겼으며 그분 역시 끈질긴 권고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어렵고 두려운 상황속에서 그분의 권고를 받아들이어 어느 가정집에서 육칠명이 모여 교리 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영세를 받고 입교하는 동안 나는 병든 몸으로 버선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곁에 부유층을 상대로 바느질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장사라곤 할줄도 모르니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며 그곳에 갔다놓으면 많은 고객을 얻을수 있을것 같아서였습니다. 손질하기 번거로운 옥양목 버선을 신을때였습니다. 질 좋은 데트론을 재단하여 무거운 책들로 눌러놓았던 솜을 넣어정성들여 만들었더니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잘 팔렸습니다.
대학에 재학중이던 둘째 딸이『엄마의 틀소리에 잠이 들어 엄마의 틀소리에 잠이 깬다』고 했습니다. 일을 하는 중에도 그 무서운 증세는 여전히 엄습해 왔습니다. 때로는 마당으로 뛰어나가 이리저리 서성이기도 하고 심하면 병원으로 뛰어가곤 했습니다. 버선을 만들때나 외출할때 쉬지않고 종일토록『주기도문』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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