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너무나 먼 새로운 나라 남아공화국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여전히 살레시오 신학원에 묵으면서 흑인 신학생들의 지도-신학교 강의와 영적 지도, 주말 오라또리오(youth conter), 흑인 신자와 교포 신자 사목, 그리고 가끔 중국인 신자 사목 등으로 제법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교포 신자는 25명 밖에 되지 않으나 모두가 남성 레지오와 여성 성서반에 가입하여 2주마다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들을 제가 직접 지도하느라고 더 바쁩니다.
주일 한국어 미사를 가끔은 가정에서 드리기도 하는데, 지난 주일은 한 호숫가에서 야외미사를 바쳤습니다. 토요일부터 미리 가 있던 형제들이 5~60㎝ 정도 되는 큰 물고기들을 수 마리 낚아내 회를 뜨고, 자매들이 매운탕을 요리하여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김치를 가끔 자매들이 갖다 주시는데 제 즐거움은 방에서 신학생들 몰래 라면을 끓여 김치와 같이 먹는 일, 그것도 한국 가요를 들으며 먹는 일 이랍니다.
한 번은 꿩 한 마리가 달리는 차에 돌진한 탓으로 그 차의 앞 유리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꿩을 주방 아줌마에게 드렸더니 집에서 아이들과 잘 먹었다고 하더군요. 시골길을 차로 달리다 보면 여러 짐승들과 가축들(소, 양, 염소)이 앞을 유유히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차에 치어 길 바닥에 죽어있는 그것들을 보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공해와는 거리가 먼 맑은 공기, 수도꼭지에서 직접 마실 수 있는 자연 지하수, 그리고 건조한 날씨,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고마운 것들입니다. 수 개월 전부터 거의 매일 체조와 조깅을 하기로 마음 먹고 그대로 실행하고 있는 덕분에 몸 상태는 그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하고 상쾌합니다. 다음에 여러분을 만나 뵐 때 제가 너무 날씬하고 젊어졌다고 놀라지 마세요.
뭐니뭐니 해도 대자연 안에서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이 여기서 사는 고마움입니다. 수도원 주변에 우거진 초목들, 여기저기 조용히 피어있는 야생화들, 하루 종일 지저귀는 새들. 그들은 매일 현관에 날아와 바닥에 뿌려 놓은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고 그릇에 담아 놓은 물을 마시고 날아갑니다. 그들은 또 마당의 여러 과일과 나무 열매를 쪼아 먹기도 한답니다. 그런가 하면 여기저기에 가끔 모습을 나타내는 뱀, 도마뱀, 다람쥐, 토끼 등등…. 이들 하나하나와 대자연 전체가 하느님을 끊임 없이 찬양하여 그분의 섭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과 비교해서 오로지 인간만이 바로 그 자유 의지 때문에 하느님을 그렇게 찬양하지 못할 때가 있고 또 그분의 섭리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또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이 대자연으로 돌아가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인간은 대자연에 깊숙히 그러나 말없이 현존하시고 모습 없이 충만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물고기가 늘 물 속에 머물러 사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둘러싸신 하느님을 늘 마시며 살아가고, 새들이 공기를 숨 쉬며 나는 것처럼 우리도 대기 속에 충만하신 하느님을 숨 쉬며 매 순간 살아갑니다. 하느님을 마시고 숨 쉬지 않으면 우리는 일 순간도 존재하지 못함을 대자연에서 배우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축복하시고 항상 기쁘고 보람되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Fr. Paul KIM/P.O.BOX927/Walkerville
1876 Rep. of South Africa TEL(직통) : 001-27-949-1888
FAX(직통) : 001-27-949-1246
◆알림=김보록 신부는 아프리카 선교기금 모금을 위해 11월 19일부터 내년 1월 28일까지 한국에서 피정 지도를 갖는다. 김 신부의 피정 지도를 원하는 본당이나 단체는 전화(02)549-9586 이문자(아녜스)씨에게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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