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지 오웰의 풍자소설「1984년」올 보면 사상을 개혁하고 세뇌하는 수단으로「새 언어(뉴 스피크)」가 나온다.
전체주의자는 전통적인 말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옛말을 신조어로 축출함으로써 사람의 사상을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가령「전쟁은 평화」라 되풀이 말하다 보면 사람들은 전쟁은 평화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내의 침투를 시도하는 어떤 페미니즘은 상식적인 남녀 평등론과는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한 마디로 하느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중성화를 노린다. 먼저 남성 중심, 가부장적인 냄새가 나는「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을 분쇄하려 한다. 성부는「창조자」, 성자는「구속자」, 성령은「위로자」로 불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느님은 저들이 바라는 양성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페미니스트는 한 술 더 뜬다. 전례서와 성서도 근본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를 찬미하는 용어로 가득 찼기 때문이란다. 시편의 맨 첫째 줄『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않는…사람』이라는 단수 표현을「사람들」이라는 복수로 바꿔 번역한다. 단수로 되어 있는「사람」이 곧 그리스도를 말한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비롯한 전통적 해석이다. 그렇다면「사람」을「사람들」로 바꾸어 버리면 그리스도라는 구체적 인물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남자로부터 여자가 태어났다는 남녀 차별적 창조설화도 아예 삭제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언어의 조작에 의한 교회혁명이다.
이러한 발상을 따르면 전통적인 성모 마리아 상은 당연히 부정되어 버린다.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라는 말로 상징되는 믿음과 순명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는 하루 속히 망각되어야 할 나쁜 모범, 가부장 체제가 강요해온 차별과 억압의 전형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여 동일한 측면과 더불어 별도의 기능과 영성을 바라셨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교회 안에서 성모 마리아를 진정으로 인생의 실격자, 교정되어야 할 대상으로까지 본다면 그것은 믿는다는 그들 스스로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아닐런지. 깊이 성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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