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르는 성가는 신심을 드러내는 기도문인 동시에 교회의 교의를 드러내는 신앙 고백문이기도 하다. 나는 군인 신학생으로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가집의 몇 가지 오류가 신자들의 오해를 일으키지 않을까 해서 이 글을 통해 몇 가지 지적하고 싶다.
①성가 37장 2절의「너희는 이미 위로를 다 받았다」는 구절은 내용상 앞뒤가 맞지 않다. 이 말씀은 부유한 사람들에 대한 불행선언에 이어지는 꾸짖음(루가 6, 24)이다.
②성가 77장 2절의「게루핌」은「Cherubim」을 음역한 것인데「케루빔」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③성가 88장 마지막 부분「곧 오신다 구세주여」는 「~구세주가」가 내용상 옳다.
④성가 139장 2절의「이른 아침 안식일에」는 교리에 맞지 않게 작사한 것 같다. 성서는 제자들이 안식일「다음날」이른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요한 20, 1~3)고 전하며, 교회도 예수께서「안식일 다음날」(지금의 일요일) 부활하셨다고 가르친다.
⑤성가 145장 3절은 삼위일체께 무궁한 영광을 드리는 내용이다. 그러나「부활하신 성신께와」는 엄청난 오류이다. 교회는 창조주이신 성부와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셔서(강생)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 구원을 이루신 구원주 성자와 이 양위께로부터 발출되시어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주 성령께 영광을 드린다. 따라서「부활하신 성자」가 옳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들에 비해 성서와 성가를 평소에 가까이 하지 않는 것 같다. 성가를 미사 중에만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도 성가로서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영광을 찬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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