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청에 들어온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중년의 신부로서 창조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인데 제대로 잘하지 못해서 늘 불안하기만 하다.
우리가 대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할 때 승오 너는 소박하고 검소하면서도 맑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도 전국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로서 밑바닥과 함께 하는 너의 삶의 방향은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다. 사실 우리밀운동도 너의 열정과 애씀의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년 대구 계산성당에서 같은 강론을 7번이나 계속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밀운동의 몫을 톡톡하게 하고 있음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지난 한여름, 이 나라를 뜨겁게 했던 박홍 신부님의 발언은 지금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농민과 함께 사는 너의 소명을 친구로서 잘 도와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승오 너는 알고 있겠지?
부자유 속에 평등이든지 불평등 속에 자유이든지 간에 한국 자본주의의 도덕과 부도덕을 교회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우리밀운동을 좋아한다. 운동이 너무 좋아서 운동을 하고 있다. 대구가 운동을 하기에는 힘든 곳이지만 그래도 시민들과 교우들이 밀어주기에 4년 동안 생명운동과 함께 우리밀운동을 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 무슨 조직이나 기본 얼개도 없었다. 이른바 예산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시대에 필요하기에 너와 함께 이 운동을 대구 경북에 뿌리내리도록 열심히 애쓴 결과 오늘날의 우리 밀이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서울 본부에서 운동과 사업을 분리하고 있지만 방향을 흐리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본다.
예컨데 모든 회비와 밀을 본부에서 통제하면서도 지부나 협의회에 조금도 여분의 것을 주지 않는 것도 지방에서 운동하기에는 효과적이지 않다.
내년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차제에 서울 본부하고 연대하면서도 지방협의회는 그 지역에 맞게 독립하는 것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이다.
지난번 너의 얼굴이 많이 상했던데 술 좀 적게 마셔라.
주여 우리밀운동을 축복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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