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가「교회와 세상 안에서의 축성생활과 선교」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2일부터 29일까지 약 한 달간 바티칸에서 열렸다. 이번 시노드는 평신도(87년) 사제생활(90년)에 대한 시노드에 이어 열림으로써 교회 구성원 전체에 대한 논의가 완결되고 65년부터 시작된 시노드 30년을 결산하는 의미가 있다. 이에 이번 축성생활에 대한 시노드 개최를 계기로 한국 수도회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정하돈 수녀의「한국 수도회의 사도직 방향」을 게재한다.
◆한국 수도회의 문제점
우리는 2천년대의「새 복음화」와「소공동체」혹은「기초 공동체 형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자신들의 카리스마와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쇄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대의 징표와 요청에 상응하고 교회 안에서의 본 자리를 찾고자 부단히 애쓰고 있음도 사실이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수도생활의 양식을 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필자는 한국에서의 특유한 수도생활의 형태 및 양식을 곧잘 비교하여 보곤한다. 왜냐하면 특별한 교회 역사를 가진 한국 교회 안에서 시작된 수도생활 역시 특유한 형태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백 년의 한국 교회 역사 안에서 첫 백 년은 박해시대의 연속이었고 후반기 백 년은 식민지 생활, 전쟁과 가난으로 고생하던 시대였다.
그런 와중에 불란서에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가 진출하였고, 그 후 뒤이어 독일에서 성 베네딕도 수도회들이 한국에서 수도생활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 남녀 수도회들은 한국이란 토양 위에 서구에서 자란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 심어놓은 것과 흡사했다. 선교지인 한국에 파견된 여러 수도회의 수도자들은 우선 선교를 목표로 한 선교수도회 내지 활동사도직 회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 역시 관상적인 면 보다는 선교와 활동적인 차원이 더욱 부각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세계 각 곳에서 진출한 수도회들이나 한국인 수도회들조차도 선교와 활동사도직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생활 체제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많은 수도회들이 다른 수도회들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다를 바 없는 유사한, 혹은 거의 동일한 종류들의 사도직에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물론 수도자들 자신까지도 회의 고유한 카리스마를 구별하지 못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수도자들 자신이 수도자로서의 자기 신원, 자기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확신이 결여되었다.
◆활동과 관상의 병행
카리스마와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산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하고도 성격이 분명한 것이고 따라서 그 카리스마를 사는 수도회원들은 자기 신원과 자기 정체를 분명히 알게 되는 동시에 그 내용을 또한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즉『수도회의 카리스마에서 나의 자아와 나의 소명을 온전하고 보다 명백하게 되찾는 것』이라고 Aㆍ첸치니 신부는 역설한 바 있다.
우리 한국 수도회들은 고유하기 보다는 대단히 일반적이거나 대동소이해 보이고 수도승적 생활보다는 일과 활동이 우선적인 듯한 강한 느낌을 갖게 한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때로는 수도회들끼리 보다 좋은 과업이나 사업을 하고 더 잘 함으로써 사회와 교회 안에서 인정 받고자 경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조차 갖게 한다. 그러나 한 수도회가 결코 그 시대와 교회의 모든 요청에 응할 수 없기 때문에 고유사도직에 속하지 않는 분야의 일들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알고 자신들의 고유한 카리스마와 사도직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Aㆍ첸치니 신부가 지적한 바 대로 수도자의 자기 정체를 확립하는 목적에 카리스마의 기능적 의의와 카리스마의 본래 내용을 재발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 하겠다. 따라서 각 수도회는 자신들의 고유한 카리스마에 따라 활동사도직의 범위와 한계를 재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도회들은 자기네들이 속해 있는 지역 교회의 책임자인 주교들의 사목 방침에 적극 협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다양한 은사들은(1 고린 12장 참조) 교회 안에서 일치와 풍요로움을 줄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이제는 한국 수도회들이 모두 오늘의 세상과 사회 안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함과 동시에 재확립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물론 관상수도회가 아닌 활동사도직 수도회로서는 활동적인 면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도직 활동이 수도정신으로 생기 차 있고 그리스도와 밀접한 일치에서 이루어지려면(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수도생활의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5항) 관상적인 차원은 필연코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간 많은 수도자들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그들이 과다한 일들 속에서 정신적,심리적, 육체적 피로와 갈등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왔다. 마치 직장인들처럼 살아가며 수도승적 생활을 하지 못하고 때로는 세상과 타협해가며 살아가야 하는 데서 심한 갈등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수도자들은 고요한 기도생활과 내적 생활을 위한 분위기 속에서 살고 싶은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 수도자들은 실제로 내적인 생활보다는 외적인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고 있기 때문에『자기 정체성을 이념이나 카리스마에 고착시키지 않고 각자의 자질과 그 실현에 두고 있다』고 Aㆍ첸치니 신부는 꼬집어 지적하였다(「부르심」에서). 그러다 보니 현대 수도자들은 자기 달란트를 과시하게 되고 남의 인정을 받는 길을 찾으며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 대열에 끼어들기를 마다 하지 않는다. 수도자들은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자유인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을 되찾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하느님 체험
수도자는 자기 자신을 실현하려는 자가 아니라 하느님을 찾으려는 자이다. 오늘날 추구하고 있는 자아실현의 이상에서는 인간이 중심에 있고 하느님은 단지 목표를 위한 수단이거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일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한국의 많은 수도회들이 선교와 활동사도직을 우선으로 하고 한국 교회의 긴박한 요청과 특수 상황에 대처하느라고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록 직접 선교를 목표로 하지 않는 수도회라 할 지라도-초창기부터 지원자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시키지 못한 채, 또 수도자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소임지로 파견하곤 하였다. 그래서인지 유감스럽게도 많은 수도자들이 그릇된 자아실현과 수도생활의 이상과 영성을 추구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 신원, 자기 정체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1992년 9월에 한국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사무국에서 실시한 설문지「수녀님들의 의견을 듣습니다」를 종합, 분석한 결과보고서(1992ㆍ11ㆍ27)에서도 오늘날 한국 수도회들이 다 함께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즉 수도자의 삶이 복음적 증거가 되지 못하고, 각 회의 고유한 카리스마가 잘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시대의 요청에 민감하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는 사도직, 세속화 현상,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만연, 가치관의 혼란, 물질주의, 쾌락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극기와 희생을 멀리하는 경향들이다. 특히 수도자 신분에 대한 자각 부족, 불확실한 정체성, 수도정신의 결여가 지적되었다. 따라서 지금 한국 교회 안에서 수도생활의 정체성이 재확립되어야 할 때임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하느님에 대한 개인 체험을 어느 기준에 두고서『했다, 혹은 못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수도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한 수도자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실제로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수도자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수도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사도직에 종사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현재 봉사하고 있는 사도직 안에서 어떻게 사느냐?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만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것이다.
오늘날 수도자들 사이에서「영성」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영성을 영적인 삶에 대한 지식이나 학문인 양 곧잘 대화 속에 끌어들이지만 영성은 곧「삶」인 것이다. 영성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그 누가 확실한 영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영성은 이미 십자가와 죽음의 삶을 통해서 얻어진 것일 테고 또한 그 영성은 계속 그의 삶 안에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수도생활-어떤 영성이든지 간에-의 영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곧 생명과 자유를 위한 자아포기, 자기이탈, 자기극복,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 죽음과 부활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과 삶이 있고, 삶이 있는 곳에 또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성소
「한국 수도회의 사도직 방향」이란 주제를 다루면서 나는 내 자신에게 줄곧 이런 질문들을 해보았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행인들이 내게 방향을 묻는다면 과연 나는 어느 쪽을 가리킬 것인가? 하고 말이다. 비록 확실한 방향을 가리켜 주지는 못한다 해도 대충 어느 쪽으로라도 가리켜야 할 텐데….
그러나 지금 이 글을 맺음 지으려는 이 순간까지도 특별하거나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그 어떤 방향도 결국 찾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다양성 안에서의 조화, 일치와 아름다움을 창조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필요한 카리스마적인 인물들을 보내주시어 당시 교회를 여러 가지 특은으로 풍요롭게 하시는 것을 우리는 교회 역사 안에서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이들 중에 많은 분들이 수도회의 창설자들이었고 그들은 어려운 시대와 교회의 상황들 속에서 위기와 고통을 감수한 교회의 기둥, 세상의 소금과 빛들이었다. 또한 자신들의 특은을 통해서 복음을 생활화하는 특별한 길을 보여주었다.
각 수도회마다 독특하고도 고유한 다른「색깔」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다른「색깔」로 각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그 고유한 색깔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삶을 관찰하고 창설자의 특은과 특별히 부합되는 예수님의 특성과 자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뿐 아니라 시대의 징표와 현 교회의 요청에 개방적이고도 수용적인, 그리고 협력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수도자 개개인의 사도직 방향 선택은 일률적으로나 또는 개별적으로 정해지기 보다는 수도회에 입회한 지원자들이 그 수도회에 이미 주어진 고유 카리스마와 창립자의 정신에 의해 정해진 사도직 방향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수도회의 장상이나 양성 책임자들은 피양성자들에게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정신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개개인에게 주신 특별한 성소(개별적인 성소)와 카리스마를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또한 구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상과 수도자 개개인이 기도와 솔직한 대화 속에서 함께 하느님의 뜻을 찾고 또한 살고자 하는 열망이 전제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회원 각자는 수도회의 고유 카리스마와 영성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되고 하느님이 개개인에게 주신 고유 카리스마를 꽃 피울 수 있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루어』(로마 8, 28) 마침내 하느님께 더욱더 큰 영광을 드리게 될 것이며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통해 교회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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