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평협이 마침내 호소문을 내놓았다.「3백만 평신도 그리스도인과 전 국민에게 호소합니다」를 제목으로 한 이 호소문에서 평협은 가정에서부터 죽음의 문화를 사랑의 문화로 바꾸자고 요청하고 있다. 우리의 가정을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 가꿔 나가자고 요청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의 해결책을 가정에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일 것이다.
평협은 그에 앞서 성수대교 사건은 단순히 한강 다리 하나가 무너져 내린 사건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존심,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윤리 도덕 가치관이 함께 한강물 속으로 추락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의도 아니고 공동선도 아닌 것이 통하고 탈법과 불법이 횡행해온 사회풍조가 오늘의 비참한 현실을 가져오게 했다고 통탄하고 있다.
평협은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지난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으며 그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책임의 일단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신자들도 내 직장 사회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나의 몫을 다해왔는지 겸허히 반성하자고 요청한 평협은 우리 모두 진리에 바탕을 두고 윤리와 도덕을 재발견해 나가자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평협의 호소가 나오기 무섭게 우리는 또 하나의 엄청난 사건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이다. 사망자를 포함, 실종자까지 수십여 명의 희생자가 또 다시 발생한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 앞에 우리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정말 우리가 사는 이 땅이 과연 인간이 살 만한 곳인가 하는 강력한 물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성수대교 참사는 그 원인이 밝혀지면 질수록 우리를 참담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교량 관리 전반을 책임진 관계 당국의 처리과정은 간접 살인의 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할 만큼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민심은 갈기갈기 찢기고 정부와 관계 당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엄청나게 깊어지면서 대통령의 대 국민 사과 담화문이 나왔다. 물론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최고 통수권자의 사과성 발언은 이 시점에서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대통령의 사과가 단골처럼 등장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근원적 치유가 안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인기성 발언이나 즉흥적, 임기응변적 조치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보고 그 뿌리에서부터 치유해 나가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누적된 잘못이라도 일단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누적된 잘못을 수정하지 않고는 그 잘못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수용하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 탓보다는 내 탓을 먼저 생각케 하는 호소문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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