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런던브리지가 무너져 내리네!무너져 내려!」라는 동요의 노래말이다. 만약 그 노래 가사대로 런던브리지가 무너져 내렸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해외 토픽을 통해 보면서 한심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 나라도 별 수 없구먼! 그러나 정작 무너진 것은 런던브리지가 아니라 서울의 한복판에 놓여있던 성수대교였다. 이제 거꾸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해외 토픽을 통해 성수대교의 붕괴 소식을 접하면서 한편으로 비통해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한심스러워 하고 있을까? 스스로 건설강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난리가 났으니…
그 사고로 무고한 많은 시민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거나 사경을 헤매게 되었으니 어쩌다 용케도 살아남은 우리들은 변을 당한 분들과 그 가족들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날 그 시간에 성수대교를 지나지 않았으니까 이제 사고의 시험대로부터 벗어나서 안전지대에 있게 된 것일까?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리던 날 나는 주위분들로부터 인사를 받으면서 씁쓸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이 선생은 한강에서 가장 안전한 다리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겠소. 아파트도 튼튼할 것이고…』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한강대교는 어찌 되었건 간에 15개의 한강 다리 중에서 그래도 덜 걱정스러운 다리이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오래 되었지만 감리가 잘 되어 최소한 강도 면에서는 요즘에 지은 아파트들 보다도 더 낫다고들 해서 그러는 모양이다.
아무튼 지은 지 25년씩이나 되어 재건축 논의가 나올 법한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완성된 지 60년이 다 된 한강대교를 건너 출퇴근하는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보니 즐거워 해야 할 일인지 한심해 해야 할 일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사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심각성은 한강 다리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안 해야 할 말로 우리 형편에서 본다면 성수대교는 괜찮은 편에 속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완공되기도 전에 주저 앉아버린 행주대교나 팔당대교에 비해 본다면 무려 15년씩(?)이나 버텨 주었으니…. 하기야 우리 주변에서 어디 그런 비슷한 일이 한두 가지였는가? 행주대교나 팔당대교가 무너졌을 때 온 나라가 비판과 반성, 다짐과 각오로 떠들썩 했었다.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니 대다수의 국민들이 아직도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는 몇몇 양식 있는 국회의원들과 기자들이 다른 한강 다리들의 붕괴 위험을 지적하고 대책을 따져 물었을 때 소위 실세라는 서울특별시장은 그들의 질문에 비웃기라도 하듯이『걱정 말라』고 했다. 방송사에서는 그 인터뷰 모습을 두고두고 보관할 것이다.
비행기가 곤두박질 치고 열차가 충돌하고 여객선이 가라앉고 공사 중이던 지하철역이 무너져 내렸을 때도 군대의 훈련과정에서 잘못 발사된 포탄이 엉뚱한 지역으로 날아들어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사람 목숨을 캥거루 사냥하듯이 해치우는 엽기적 살인행위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을 때도 사태의 수습과 대책 마련은 늘 그만그만했다.
그때마다 담당자들은 유감 표명과 형식적 사과, 그리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리곤 한다. 적당한 선에서 담당자 몇 사람쯤 골라서 처벌하는 일도 단골 메뉴이다.
대개의 경우 본질적 책임은 과거에 있다. 엽기적 살인행위나 군의 하극상도 군부독재의 산물이요, 공공 시정물의 붕괴는 과거의 독재정권이 부실공사를 했기 때문으로 돌리면 된다. 모든 사건의 원인을 과거로 떠넘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후 관리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기 십상이다. 모든 책임은 건설을 담당한 정권에게 있으니 우리는 다른 자리로 전보 명령이 날 때까지 큰 사고 없이 잘 지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모든 일이「 네 탓」이지 「내 탓」은 없다. 그러니까 본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
여론도 마찬가지이다. 사건이 터지면 남비 끓듯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지곤 한다. 우리 민족은 그러한 점에서 확실히 너그럽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잊어버린다.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인적(?) 기질이 공직자들의 직무유기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그러움은 갖춰야 할 덕목이나 무조건 잊고 덮어버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우리 죄를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고백과 용서 뒤에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못을 용서하되 정부의 수습대책과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잘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평가 결과는 반드시 선거에 반영되어야 한다. 나라 살림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나라 살림을 맡기는 일은 국운을 쇠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그래서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루면서 민주화를 이루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나라 살림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공직자들이 늘어난다면 상대적으로 백성들의 걱정은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다. 진정한 민주화의 완성은 그때 가서야 가능해질 것이다.
아무튼 런던브리지는 오늘도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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