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회사에 출근한 나는 웅성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부하직원을 발견하여 무엇 때문에 그런지 물었다.『옆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이 백혈병에 결려 혈소판이 급속히 줄어들어 생명이 위태롭다는 소식입니다.』
나는 급히 알아본 결과 그의 생명은 풍전등화 같았다.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방법은 혈소판을 넣어주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건강한 사람의 피를 뽑아 그 중에서 혈소판만 추출하고 다시 피를 주입하고 추출된 혈소판을 환자에게 주입하면 혈소판 수치가 올라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소판 제공자는 이틀 정도 휴식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그 일을 해줄 직원의 희망자를 모집하였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직원이 없었다. 나는 부하직원 15명을 회의 소집하여 꺼져가는 생명에 불을 붙여줄 사람이 필요하니 A형 피를 가진 젊은 직원의 지원자가 나서주길 청하였다. 하지만 절대 강제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제일 먼저 2명이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들어 주었다. 다음 3명이 손을 들어 주었다. 먼저 2명은 천주교 신자였다. 그들은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평화의 마을에 가서 불구자들을 위해 반나절을 노동을 하고 돌아온다. 나의 부하직원 5명을 포함하여 8명 정도 희망자가 있었다. 내가 직접 하지는 못하였어도 죽어가는 직장 동료를 위해 내 부하직원이 주축이 되어 살리려는 일은 나로선『알렐루야』를 수없이 되뇌었다.
그 후 그 환자는 완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같은 경험을 한 나는 그리스도란 나 혼자서 깨우치는 것 아니라 공동체에서 그것을 발견해야 하며 그것도 제일 버림 받고 헐벗은 이웃을 외면하고서는 어찌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는가? 자기 구원만을 위하여 신앙을 갖는다면 과연 예수님 재림시 그를 선택하겠는가? 나는 이런 것을 볼 때 군대에서 줄을 잘 서야 하듯 천주교라는 줄을 잘 섰다고 하니까 박 신부님과 예비자 관객이 박장대소를 했다. 박 신부님의 강론은 추상적이고 환상적이 아니라 나에게 그리스도를 만질 수 있게 해주고 예수님과 대화를 하게 해주고 성령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6개월은 화살과 같이 빨랐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삶을 살아온 부분이었다. 내 육신의 고통은 언제부턴지 점점 사라져갔다.
드디어 12월 24일 아기 예수가 오시는 날 내가 새로이 태어나는 날이 되었다. 온 가족은 나의 세례를 축복해 주었다. 더구나 나로선 평생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12월 24일 자정미사의 독서를 신영세자가 한다는 말과 함께 교육 뒷바라지를 해주던 자매님이 내가 1독서자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너무 놀랐다. 나로선 이보다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혀도 오른쪽이 마비가 되어 발음도 이상했던 내가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게 되다니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건강도 많이 회복되어 눈도 감기며 안면근육도 움직여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호전됐는지도 모르게 점점 나아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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