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미사를 마치고 경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간다. 입춘을 지나고 부터 해돋이가 부쩍 당겨진 느낌이다. 삼덕성당에서 병원으로 향하는 길가의 플라타너스는 아직 앙상한 가지를 드리우고 있지만, 수양버들 맹아(萌芽)는 벌써 기다리는 봄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두운 마음을 털어주려는 듯이 참새, 비둘기, 까치의 지저귐이 푸나무처럼 싱그럽다.
몇 달째인가 병원에 다닌 지, 그분은 8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지만, 나는 고작 몇 달이 여삼추인양 느껴진다. 발에 익은 대학병원 복도를 지나 5층 화장실에 들렀는데, 마침 어느 환자 분이 휠체어에 몸을 기댄 채 머리를 감고 있다. 오른쪽 다리에는 기브스를 하고 흰 붕대가 초상집의 만기처럼 섬뜩하다.
『수고하시네요, 제가 무엇 좀 도와드릴 일 없습니까?』
『아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외로 고통스러운 육신에 비해 목소리는 아까의 새들처럼 해맑다.
『휠체어 타신 분에게 몸뚱이가 멀쩡한 제가 이런 말씀드리면 외람됩니다만, 저는 휠체어 탄 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어요』
『...?』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있는 분이 지급 8년째 병상에 누워있는데 그분은 사지가 마비되어 듣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있거든요. 그분에 비하면 잡수실 수 있고 불편하나마 움직일 수 있는 선생님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또 시간만 흐르면 낫기는 할꺼구요. 정말 부럽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매사에 감사하라 하셨지만, 정말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하나를 가지면 둘이 더 아쉽고 열을 지니면 백을 엿보고 탐내는 것이 바로 못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한 그릇의 밥, 한 모금의 물, 한 자락의 따스한 이불조차 절로 생긴 것이 없다. 부모님의 노고요, 형제자매의 수고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감사하는 마음 고마워 할 줄 아는 예절을 잊고 사는가 한 방울의 땀 한 푼의 돈도 들지 않거늘.
다시 한 번 깨어나자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떠오르지만 결코 오늘의 그것이 아니고 또 영원한 것은 아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작은 은혜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자 감사하자 그리고 감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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