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 생활자들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역시 한 달치의 월급을 받을 때이다. 땀 흘려 노동한 대가에 대한 기쁨보다는 그 대가가 보유하고 있는 가치 즉 재화에 대한 기쁨이 더욱 크다는데 대한 설명은 아마도 필요 없을 것이다. 생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인간들을 조금씩 영악스럽게 만들고 있고 실제로 그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노동의 신성함을 깨달은 대가로 월급을 생각하는 사람이 남아있기에는 우리의 지난 삶이 너무나 각박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즐겁고 행복했던 그 기분도 월급여에서 떼인 세금의 명세와 액수를 보고 나면 구겨지고야 만다. 기쁨을 사정없이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의 세금이 쥐꼬리만한 월급봉투의 한구석을 덥석 베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봉급 생활자들의 세금이 많이 삭감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 제반 세금규정에 비해 볼 때 상대적으로 과다한 세금을 봉급 생활자들이 상납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거두어들인 세금에서 이 같은 현상은 다시 한 번 확인이 되기도 했다. 수년간 되풀이 되어온 세금의 과다징수 현상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드러났고 그 공로자는 역시 봉급 생활자들이기 때문이다. 목표액을 초과달성하는데 본의 아니게 기여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폭발할 때가 있다. 바로 공직자들의 비정상적 치부나 탈세 또는 비리들이 터질 때이다. 바로 지금과 같은 때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놀라운 것은 그들 재산의 거대한 규모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이른바 국민의 종이어야 하는 그들의 재산은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쯤 되면 청렴과 가난의 표상으로 일컬어져 온 공복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온 공복의 세계는 권력과 명예와 그리고 돈이 따르는 현대판 왕도나 다름이 없었다. 오늘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공직자가 아니었으니 부자가 있는 것도 당연하다. 부자 선조를 둔 덕에 나면서부터 부자인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그들의 원초적 행운일지도 모른다. 과거까지 거슬러 간다면 그야말로 사안이 너무 혼란스러워진다. 부자 조상을 두었다는 탓까지야 할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이번 비리척결이라는 대장정을 부자 공직자라고 해서 죄다 겁낼 필요는 없다. 현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김영삼 정부의 새 일꾼, 장본인들이 깨끗한 마음을 소유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올해초 이 좁은 땅덩어리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학원사태, 이른바 대학입시 부정사건에 일조를 한 사람들이 이 정부를 맡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위장전입이라는 편법으로 땅을 구입하고 법을 몰랐다고 호소하는 무식한 사람에게, 그린벨트 내에 주택을 짓고 법에 저촉되는지를 몰랐다고 발뺌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수십억 원에 이르는 건물을 짓고 편법으로 여기저기 땅을 사들이고도 자신의 연봉을 1천여만 원이라고 신고한 사람에게 나라와 국민의 건강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줄줄이 터치는 새 내각과 고급공무원들의 비리를 보면서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도 많은 모양이다. 마음먹고 털려고 들면 어느 누구라도 먼지가 날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먼지도 먼지 나름이다. 깨끗한 먼지도 있을 수 있다. 옥석을 가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분명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새 정부의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깨끗한 정부가 출범하기 위해서 그 구성원이 깨끗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것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도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 과제다. 만일 위에서부터 꼬인 비리와 부정부패를 지금이라고 바로 잡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이란 있을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면 우리가 함께 가야할 길은 뻔하다. 어두움의 길이자 절망의 길이다.
깨끗하다는 말은 말뜻 그대로다. 거짓말을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하자가 없음을 칭한다. 바로 우리의 공직자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만 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깨끗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새 정부가 출범과 더불어 겪는 수많은 걸림돌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 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일련의 사건들은 새 정부가 넘어야 할 시련의 언덕 가운데 첫 번째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변화를 위한 진통이 이처럼 큰 것은 그동안의 어두움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통은 어느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님을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분명히 깨달아야만 한다. 바로 우리 자신이 그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은 아닌지 냉정히 성찰을 해야만 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 신자들은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변화를 주도해 나갈 결심이 우리 신자들에겐 먼저 필요하다. 위든 아래든 신자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깨끗해지기 위한 노력에 앞장을 서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것은 깨끗해지기 위한 노력에 교회가 앞장을 서야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것이 이 시대 교회에 맡겨진 중대한 사명인지도 모른다.
<취재국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