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를 휘몰아치는 인사바람이 꽃샘바람 무색하게 모질고 차다. 화신이 전해지기까지 아직도 크고 작은 요직인사들을 「꽃」피워야 할 터 인즉 당분간은 바람 잘 날이 없을 것 같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았다는 시구를 되뇌일것도 없이 봄의 아름다움은 바로 앙상한 겨울을 보내는 기다림 속에서 영글어 지는 것이다.
아다시피 파격적이고도 의표를 찌른 이번 인사는 해동하지 않은 땅에 사철꽃을 옮겨 심은듯하여 현란하다 못해 어지럽기조차 하다. 아무리 개혁이 시급해도 「백년수」를 하루 아침에 치솟게 할수는 없으며 이 점에서 차분히 파종하고 가꾸는 정성과 조심성이 따르지 않으면 뿌리는 내리지 않는다.
새 정부는 모처럼 일구어낸 정통성에 걸맞은 의욕을 지나치게 앞세운 탓인지 당초 매스컴이 찬양일변도로 분석한 신임자 프로필과는 달리 벌써부터 각료들의 불법ㆍ편법 스캔들로하여 도덕성이 여지없이 훼손되고 있다. 「인사가 만사」라 하였거니와 인자의 요체는 만인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찍이 김영삼 대통령은 당태종의 통치철학을 담은 「정관정요」(貞觀政要)를 애독했고 그를 보좌하는 황인성 총리 또한 「구민심서」를 가까이 해왔다고 전한다. 특히 다산은「나라를 잘 다스리는 일은 사람을 잘 등용하는 일에 달려있다」(위방재어용인) 고 했다. 이울러 정관정요에도 현명한 인재를 등용해 올바른 소리를 듣고 받아 드려야 한다는 대목이 있음을 상기할 때 이 점에 대해 소홀히 보아 넘기지는 않았을 터인데도 결과는 이와 상치하여 유감이다.
더욱이 개탄을 금할수 없는 것은 「책 공부」를 게을리 한 탓인지 나라와 백성에 큰 잘못을 범한 당사자조차 비위가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개전의 빛이 보이지 않는 작태이다. 이쯤 되면 「윗물 맑기 운동」은 구태의연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아니 나설 수 없다.
우리가 이번 인사문제를 놓고 거듭 유감을 금할 수 없든 것은 발탁과정의 소홀은 차치하고라도 입각후보자들은 삼고초려(三顧焦廬)의 예에 대응할 만한 겸허한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사 「감투」에 대한 인간적 욕구를 저버리지는 못했다손 치더라도 한번쯤은 개혁의 의지가 섰는가를 자타가 깊이 성찰했어야 옳았다.
흔히 털어 먼지 않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름직이 털어 먼지가 날 소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의당 사표의 자리를 사양하는 것이 지도자의 도리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나라의 호함란 벼슬아치는 그의 부친 호질과 더불어 청백리로 소문났다. 하루는 무제가 그를 불러 묻기를 부자간 어느 누가 더 청렴한 가를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신은 아비만 못합니다. 부친의 청백은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지만 신의 청백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고. 오늘날 청백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아도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에 숨기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우리는 호질의 사람됨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의 아들이 보여준 겸양지미덕을 타산지석으로 삼자함이다.
이 점 예수님께서 일깨운 「말석에 앉으라」는 교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좌우명이 되고 남는다.
장래의 지도자가 될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는 초대를 받거든 오히려 맨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 여보게 저 윗자리로 올라 앉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다른 모든 손님들의 눈에 당신은 영예롭게 보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루가14, 10~11).
사람은 누구나 상좌 차지하기를 탐한다. 그러나 분수에 맞지 않은 자리에 앉았다가 정작 상응한 그릇이 못 되어 밀려나는 민망스러운 사태를 이 순간에도 수없이 목격한다. 그나마 높은 자리에 앉으면 과거의 잘못은 모두 면책 받은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기 일쑤이나 말석은 섬기고 봉사하며 인내하는 자리이다. 세상이 각박하고 총체적 위기상황에 몰린 것은 바로 거드름과 부리려 하는 자세 때문이다.
모두가 지도자일수는 없듯이 모두가 높은 자리에만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자리를 지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인격을 키우기 위해 말석의 고충을 헤아리고 때가 되면 발탁의 배려를 잊지 않는 아량을 지녀야 한다. 이는 계파와 지연과 인맥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흔히 정치인은 궁지에 몰리면 백의종군을 자주 인용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말인 즉 마음을 비우고 오직 대의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이 경우 작심삼일에 그치는 것이 비일비재함은 여기에 보기를 열거 할 것도 없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진실로 새 정부에게 간구되는 것은 명실공히 백의종군 참 일꾼을 가려 뽑는 작업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끝까지 자리가 어긋나기 마련이다. 김영삼 정부는 방금 직면하고 있는 시행착오를 수습하기에 더 이상 시간을 유예할 수 없는바 더불어 모든 공직자, 특히 고위층은 살을 깎는 사표를 아로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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