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다녀오리라는 생각 끝에 경상도에 있는 칠곡행 첫차를 탔지만 마음이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전부터「나환자」라는 말을 접할 때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때로 어려운 일이 닥치면 죽을 것 같고 괴로워하기가 쉬운데 불치의 병을 만나 아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불현듯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떨쳐버리곤 했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주변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중이었고 안으로 들어설수록 정갈하게 다듬어진 병원 안팎과 예쁘게 꾸며진 작은 성당은 이곳도 내 생활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했다.
수녀님의 안내로 병실을 들어서면서 그들과 손잡는 데 이의없이, 오히려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것은 왜일까? 다음 병실로 옮겨갈 때마다 비좁은 마음을 따듯이 감싸주는 환자분들 앞에서는 내 삶의 소화되지 못한 부분을 통곡하고 싶은 절절함이 있었다.
실제로 어떤 할머니께서는『애고 그 먼 데서 이곳까지』하시며 바나나 한 개를 사물함 깊숙히에서 꺼내 먹이고 싶어하셨다. 그러더니 너나 없이 빵ㆍ초코 우유 등을 다투며 꺼내 나의 빈 두 손을 가득 채워 주셨으니….
마지막 병실에는 할아버지 환자 한 분이 연신 웃고 계셨다. 안내하시던 수녀님께서『많이 되었나요?』라고 묻자 곱게 접은 화선지에「늘 사랑하소서」라고 쓴 다발을 꺼내시며 또 웃으신다. 방문객이나 이곳을 후원하는 릴리회 회원들에게 나누어지는 것이 큰 바람인 듯 보였다. 틈 나는 대로 정성껏 쓰셨지만 낙관이 없는「늘 사랑하소서」를 몇 장 건네받을 때는 뜨거운 목울음이 넘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최첨단 의료시설이 잘 갖추어진 큰 병원에서는 간혹 절망의 신음이 깊어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었는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애정과 사랑이 병원 전체에 곱게 번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환자분들이 더이상 나병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새 삶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고통을 이겨내고, 또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많은 후원자들의 사랑이 교류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더불어 작은 도움을 큰 사랑으로 깨우쳐주고 다른 이들의 등을 두드려 주는 환자분들께는 도리어 내가 겪을 고통의 일부를 넘겨 드린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극구 권하시는 오후 4시의 늦은 점심을 싱싱한 상추에 가득 담아 베어 물면서 늘 감사할 줄 모르는 내 삶이 부끄러워 꺼이꺼이 가슴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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