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급행표를 가지고 완행열차를 탄 일이 있었다. 순간적인 착각에서 빚어진 실수였다. 그 실수로 완행료를 따로 물어야 했고, 난방이 없는 한겨울의 차내에서 온 몸이 얼어드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게다가 그 완행열차는 철교 위에 정지한 채 여러 시간을 지체해야 하는 사고까지 냈다. 철교 위에서 옴짝달짝도 못했던 그 몇 시간은 승객들에게는 바로 지옥이었다. 아침에 시발역을 출발한 그 열차는 다음날 새벽에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는「급행표를 가지고 완행열차를 탄 멍청한 여자」라면서 나를 놀려댔고 아이들은 엄마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엄마다운 실수라면서 한심해했다. 아이들은 나를 기다리느라 밤에 잠도 못 잤다는 투정이었다.
급행표를 가지고 완행열차를 탄 멍청한 여자라는 친구의 표현에서 나는 내 삶의 상징을 느끼었다. 그러고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 볼 때 그 말은 너무나도 적절한 진실인 것이다.
사실 나는 완행열차의 승객임이 틀림없다. 미련하고 주변머리가 없어서 잘못 탄 것이라고 애석해 한 적도 있었지만 그 완행열차에 안배되어 있는 신의 은총과 섭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급행열차의 승객으로 살아왔다면 그 좌석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그 쾌적한 속도에 만족하여 더 높은 것 참된 것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급행열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작은 시골역과 간이역에도 정차하는 완행열차의 승객으로 살아 왔기에 나는 늦게나마 그분을 만나는 영광과 기쁨을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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