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우리나라만큼 뜨겁고 높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입시철이면 연례행사처럼 열병을 앓는 갖가지 부작용들이 온통 언론매체를 뒤덮는다. 이제 새 학년을 맞으면서 양질의 교육은 학교에서, 특히 대학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일까를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가정이 교육에서 갖는 의미를 간과하거나 적어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짙다. 실적을 최우선시하는 현대 산업사회가 가정의 생활조건에 깊숙이 관여해 들어오면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개인의 발전, 상부상조, 삶에 대한 보장이 점점 더 포괄적이고 익명으로 이루어지도록 조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사회 홀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배양한다. 이렇게 되면「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는 뒤로 처지게 되며, 가정의 의미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사회가 중심가치가 되면 될수록 가정은 고유한 가치나 목표를 더욱더 사회에 종속시켜 나가야 한다. 정신적, 도덕적, 종교적 내용들을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하는 부모의 권리와 의무는 많은 이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짓거리로 여겨진다.
현대사회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교회는 가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개인의 구원과 일반사회와 그리스도교사회의 구원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되어 있다』(사목헌장, 47항)라고 단언한다. 개인이나 사회나 교회 어느 누구도 가정의 기능을 말살할 수는 없다. 교회는 가정을 하느님이 설립한 최초의 공동체로 여긴다. 그래서 공의회는 인간이 지닌 불확실성과 인간적 만남을 향한 갈망에 그리스도교적 가정이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주지시키려고 애썼다. 한마디로 가정은 교회와 세계를 이어주는 경첩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다운 삶과 세계 안에서의 행위가 어긋나서는 안되기 때문에(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7항)공의회 교부들은 현대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이 가정에서도 시급한 사안들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각 시대의 문제점들을 중시한다. 왜냐하면 시대정신 안에서 하느님의 정신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변혁이 초래하는 어떠한 난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변혁은 자기 검증의 계기가 된다. 새로운 발전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사목헌장 47항). 그러면서 가정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다른 공동체에 전가시킬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가정은 인간사회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교육 공동체」이다. 왜냐하면 사람과 호의야말로 가정의 생활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능력과 인격형성의 능력은 다른 어디서도 나올 수가 없고, 가정에서만 배양된다. 포르트만(AㆍPort-mann)의 말대로, 가정은 인간에게 있어서『제2의 탄생』을 위한 장소이다. 가정 안에서 인간은 신뢰와 상부상조를 경험하며, 공동체ㆍ봉사ㆍ정의ㆍ연대성 그리고 자유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가정은 인간에게 필요한 정신적, 윤리적, 종교적 방향을 제시한다. 학교를 포함한 공공기관들이 이와 같은 가정의 임무를 대신 수행할 수는 없다. 공공 교육기관은 감정적인 관계가 요청되는 원초적이고 인격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사회가 개개인을 가정이라는 생활영역에서 분리시켜 정당이나 사회단체따위 이차 사회제도에 결부시키려는 시도를 강제로 반복하였으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이 좋은 예가 된다.
가톨릭 사회론은 교육을 정당하게 수행하는 세 주체를 거론한다. 즉 부모, 교회, 국가이다. 그 중에서도 부모는 천부적인 우선권을 갖는다. 『양친은 자녀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 중대한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양친은 자녀의 첫째이며 주되는 교육자로 인정되어야 한다. 교육의 이 의무는 이렇듯이 중대한 것이므로 그것이 결핍될 때 그것을 보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 3항). 부모는 일차적으로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심성교육에 책임이 있다. 부모는 자기 자녀들이 사회에 적응해 가도록 준비시켜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공공 교육기관들이 다음 단계의 교육과제를 넘겨받게 된다.
다른 한편 교회는 세계관이 다양해진 다견사회에서 국가가 교육을 독점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교육에는 가치관이나 윤리규범이 도외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의 사회론은 교육과정이 부모와 교사 그리고 국가의 적극적인 협력관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천명한다(같은 선언, 8항). 지식의 전수만으로 교육의 소임을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부모와 교사는 언제 어디서나 인간 전체를 가르치고 기르는 본보기이며 교육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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