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 60평생이라면, 우린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까?
불교에선 전생에 2천번의 인연이 있어야 이승에서 옷깃을 한번 스치는 인연을 갖는다는데.
사노라면 수천 수만의 사람을 만날 것이다. 한번의 옷깃을 스치고, 이름을 듣고 얼굴을 대면했다는 것으로 한 사람을 만났고,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만남이란 각 개인의 성향, 인격, 지식, 가치관의 정도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게 된다.
그래서 평생을 이웃으로 살아도 만나지 못하고 스쳐가는 바람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마디의 대화로도 이해의 폭을 함께하며 인생의 싱그러움을 더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한 생을 살며 서로에게 향기를 남기는 만남은 몇번이나 될까?
수년이 흐른 그 어느날 일지라도 문득 떠올려지고 단 한번의 소식조차 없다 갑자기 찾아온 그라 할지라도 방문의 이유를 헤아리지 않고, 늘 만나왔던 친구처럼 반기고 반길 수 있는 사람, 무턱대고 한 밤중에 찾아간다 해도 왠일이냐고 묻지 않고 난로 위에 물이 끓는 주전자를 들어 차를 권하는 사람이라면, 이때 비로서 우린 서로 알고 있노라고 말할수 있겠다.
삶의 이론적 바탕이나, 명백한 가치관을 끄집어 내러 서로 대어본 일이 없어도 있음 그대로 받아 들여지고, 받아 들이는 삶을 이뤄가는 만남 말이다.
나의 생에 그럴수 있는 사람을 몇이나 만나 나와 그와의 삶을 초록빛으로 이뤄낼수 있을까?
내가 그 노인을 대면하게 된것은 사순절 중간쯤되던 어느날이였다.
간암으로 투병중인 노인은, 노인이라기 보다 아저씨라 해야 마땅한 60초반이셨다. 그러나 암치료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빠져 영락없이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할아버지로 보였다.
할아버지는 병명과 더불어 직감하고 계시면서도 초연히 방문객인 나를 반기셨다.
하느님과 영생을 믿는냐고 묻는 내게『인간 본성상 죽음은 두렵고, 사후세계가 있어주길 바라지만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할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에 누린 평화와 기쁨이 이미 삶에 대한 보상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어 오셨다.
젊은 시절 교회를 지나가다 배워 익혔단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라는 시편 귀절을 읊조리시며, 사는 동안 하느님을 두려워 했노라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엔 하느님이 순수하게 지으신 한 인간의 얼굴이 보였다.
『죽음을 목전에 두신 노인 앞에서 새파랗게 젊은 제가 얼버무리는 인생이야기며 하느님과 사후 이야긴 가당치 않겠지요?』라고 여쭈었을 때였다. 할아버지는 연륜과 관계없이 인생은 누구나 다 다른 길을 걸어 가기에 옳고 그림을 없으시다며 내 이야길 진지하게 경청하셨다.
죽을때야 비로서 하느님을 찾는다는건 염치없는 일이라고 마다 하시던 할아버지가『늦게온 아들도 하느님은 기다려 주실까요?』하시며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없겠느냐고 하셨다. 그 순간, 나는 하느님의 자비와 더불어 이 세상에서부터 인간의 삶에 대한 충만한 보상을 주시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드렸다.
그 할아버지는 생의 연륜과 성별, 지식을 초월해「만남」그 자체 만으로 기쁨을 주셨던 분이다. 마치 어린시절 강가에서 수정돌을 찾아다니다 발견한 그 환희같은 것이랄까?
그 분은 내게 새로운 삶의 관점을 보여 주셨고, 나의 신앙의 폭을 넓혀 주셨다.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르쳐 달라시던 할아버지는 요셉이란 세례명을 받으시고 하느님께 달려 가셨다.
할아버지가 하느님께 달려 가시던 날, 나는 연도끝에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씀을 건넸다. 『요셉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행운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행운은 하느님의 축복이셨습니다. 요셉 할아버지! 저에게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지요? 이젠 요셉 할아버지 차례입니다. 저를 위하여 전구해 주십시요. 제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달려갈때 넘어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요셉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하느님 곁에 계실테니깐요』
만남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삶을 지고하게 하고 빛을 더해준다.
그 누군가가 내게 소중한 한 사람으로 다가서듯 나도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한 사람으로 서고 싶다. 단한번의 눈길, 미소, 몇마디로도 기쁨과 슬픔이 공감되는 만남을 이뤄가는 삶 말이다.
부딪쳐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서고, 미움으로 고뇌하다가도 사랑으로 돌아서는 끊임없는 연습끝에 우리는 비로서 만나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너를 만나 알고 있다는 것은 감추어졌던 너를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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