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따금씩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으로 당연시 되는 것들이 사뭇 진실에서 벗어나 있음을 깨닫게 되어 쓴 웃음을 지은 경험들이 있다. 아울러 언어나 문자와 같은 의사 소통의 수단이 과연 생각이나 마음 그리고 감정 등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가 회의적이 되기도 한다.
「행간(行閒)을 읽는다」는 옛분들의 가르침이 새롭게 다가 온다. 기실 우리는 진리 그자체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것 만큼만 납득할 뿐이다. 우리 모두는 저 나름대로 사고의 틀에 갇혀 있거나 지극히 편협된 시각의 소유자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설피 알거나 막연히 아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만도 못함을 왕왕 경험하게 된다. 과연 완벽한 이해가 우리 인간에게 가능한가 하고 불가지론을 펼칠수도 있으나 최소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우선은 자기를 기만하지 않는 것이며 진리에 이르는 첩경이 아닐까.
오늘날처럼 전통이란 단어가 크게 회자된 때도 일찍이 없었을 듯 하다. 그만큼 비전통적인 시대, 달리 말하면 정신차릴 수 없을 만큼 변화가 빠른 시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통이란 단어가 빈번히 사용되고 남발되어 희석화됨은 심지어 유행가에 있어서도 「전통가요」라는 용어가 등장되고 있음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과연 전통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과연 오늘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등 그 의미나 내용 등에 대해 진지한 이해를 꾀하려는 노력이나 시도를 해 본적은 있는지, 전통의 사전적 정의는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어 전하여 내려오는 것」 또는 「관습 가운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특히 높은 규범적 의미를 지닌 것」등이다. 이와같은 사전적 정의와 달리 전통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각기 다르다. 이를테면 유행이 지났거나 매우 낡아 입기 거북한 옷처럼 생각하거나, 심지어 드러내 보이기 부끄러운것 또는 현대와 전혀 어울릴 수없는 케케묵은것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다.
바로 이 전통에 대한 몇가지 잘못된 이해를 살펴 보려 한다.
전통을 이야기함에 있어 흔히 고유(固有)함이 자주 거론되는데 「세계 최초로」등 시간적인 의미가 강조된다. 물론 신소제 개발등 첨단 산업에서 운위되기도 하지만 이점은 인류 역사에 있어 이른바 4대문명의 발상지가 어떠한지를 살필때 그 의미는 그리 강조될 것은 못된다 하겠다.
그것은 마치 우리보다 앞선 이들은 모두 뛰어났고 뒷 세상에 난 사람들은 모두 모자란다는 따위의 모순과도 통한다. 「뒷물이 앞물을 치면서 흐르것」이며 「후생이 가외(可畏)가 아니던가. 아울러 우리의 전통문화를 되돌아 볼 때 우선 사상이나 종교에 있어서 불교 유교 모두가 타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우리 땅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니 단순이 수입품으로 보아야 한다는 식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범하게 되는 것과 같다 하겠다. 시작의 전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타민족이나 국가와 구별되는 우리적인 것을 이룩했느냐에 촛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시작은 타처에 있더라도 원류와 전혀 달라진 양상 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상술하면 우리의 전통문화에 있어 큰 비중을 점하는 불교나 유교는 우리민족에 있어 전혀 이국적이나 이방적으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토착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 어엿함이 있다. 인도나 중국과 크게 구별되는 우리적인 양상을 이루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도 이를 수입품으로 홀대하지 않는다. 왕조에 따라서는 이들 사상과 종교가 정신적인 지주로서의 역할이 약화되었다던가 일부 부패양상을 노출하기도 했으나 모두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다.
조선이 국가를 잃은 것을 유교에 입각한 사대주의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반면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5백년 넘게 왕조를 견지한 정신적 지주가 바로 성리학이었고 유학의 사상적 흐름에 있어 중국보다 오히려 깊숙한 이해에 도달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세기에 들어와 현대화와 선진화라는 미명(美名)으로 우리의 귀한 정신적 유산 즉 전통을 옥석(玉石)의 구별없이 무조건 무책임하게 거부하고 파기하여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통이라는 것은 화석(化石)은 아니다. 그리고 영구불변의 법칙이나 원리는 더욱 아니다. 비록 전통은 결과로서의 나타남이긴 하지만 늘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형성되는 것이다. 완성품이라기 보다는 진행중에 있는 것이며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전통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 몸에 붙은 때를 닦아 주려다가 아기의 살까지 상하게 한, 아니면 너무 심하게 다루다가 아기까지 하수구에 빠뜨리는 것과 같은 양상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만을 따르다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달리는 기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우리의 전통을 사실 그대로 제대로 보려는 자세와 바른 시각을 기르는 일이라 하겠다. 우리의 과거는 결코 부끄럽거나 전근대적인 것만이 아닌 우리 나름대로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이룩된 예지가 그 안에 깃들여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한한 에너지가 그 안에 충전되어 있고 우리들의 정신사고 의식등의 축전지로서의 역할이 대기중에 있다. 이 점이 우리가 전통을 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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