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오늘날 전 생명의 위기에 어떤 지혜를 제공해 줄 수 있는가? 우리가 지혜와 생존을 추구할 때, 교회의 영적 전통 안에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아직도 시대에 너무나 뒤진 영혼과 육신, 하늘과 땅, 은총과 자연의 이원론적 전통들을 기꺼이 묵과할 것인가? 축복받고 은총이 내려진 이 우주 자체를 영성의 출발점으로 삼고서 플라톤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적 전통으로 이어지는 이원론과 원죄 독트린을 과감하게 깨고 창조 중심으로 한 영적 전통을 찾아내야 한다.
원복(原福)이 원죄(原罪)든 그것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어떤 죄보다 우선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그리고 서구 문명은 창조보다 구원을, 자비보다는 죄를, 우주적 인식보다는 개인적인 자기반성을 더 치중해 왔다. 그래서 지닌 6세기 동안 서구 문명사에 있어서 「Viapositiva」즉 긍정, 감사, 기쁨의 길이 가장 부족하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 전통은 뉴턴과 데카르트의 기계적 세계관, 즉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잔재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오직 영적 구원만을, 죄인으로서의 인간만을, 아버지로서의 하느님만을, 내적인 묵상만을, 소위 왼쪽 두뇌에 치중된 것만을 가르친다. 여기에는 지구와 우주, 여성과 제 3세계, 땅과 숲, 분단과 핵무기, 열대림과 석유에 대한 인식이 없다. 너무나도 삶을 죄의식과 자기 반성의 두려움을 가르친다. 파멸의 두려움, 남들에 대한 두려움, 자기와 우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든 존재와 자기 자신만의 존재, 독창성을 불신한다.
심리학자 오토 랑크는『만일 종교가 우주를 상실했을 때 사회는 신경증에 걸린다』고 경고했다. 이것은 죄와 구원의 신학을 대신하여 창조 신학으로 나아간다면 사회는 제 정신이 든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우리의 신학은 너무 무미건조하고 답답하고 시적인 감수성과 열정과 상상력이 부족하다. 창조신학이라고 하여 무슨 새로운 전통이 아니다. 창조 중심적 영적 전통은 BC 9세기, 바로 성서의 첫 저자들, 야훼스트ㆍ시편ㆍ잠언ㆍ예언자들ㆍ예수님ㆍ신약성서에서, 서구 최초의 신학자였던 성 이레네오에서도 그 근원을 밝혀낼 수 있다.
이제 균형을 잡아보자. 원복과 원죄창조와 구원, 신뢰와 두려움, 몸과 영혼, 성과 에로스, 남성과 여성, 서양과 동양, 소우주와 대우주, 뇌의 왼쪽과 뇌의 오른쪽을 동시에 담은 영적 전통을 현대 세계에 제공할 때 병든 현대문명을 바로 잡을 수 있고 교회안의 문제도 풀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제 교회안의 환경운동은 그 본질적인 영성으로 접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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