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년 X월 X일
오늘은 교포사목이라는 임무를 띠고 생애 처음으로 미국에 온 날이다.
가방 하나 들고 낯선 이곳 공항에 도착하니 환영 나온 30여명의 신자들이 피켓을 들고 우루루 몰려왔다. 어색해 하면서도 신자들이라 구면인양 친근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온통 낯선 분위기 속에서 촌닭을 장에 내어 놓았듯이 어벙벙하게 지낸 하루였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는데도 모르니 자신이 없고 두려움이 앞섰다. 미지의 세상을 위해 온몸 던지신 사도들처럼 이제 나도 온 몸으로 복음으로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오늘은 새로운 출발종이 울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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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첫 주일 미사를 감격스럽게 봉헌했다. 미사에 나온 신자들은 다해보아야 1백여명이다. 그러나 많이 왔다고 한다. 교우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를 위해 온 신부의 관상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신부에게 있어서 주일은 장날인데 미사 한 대 봉헌하고 하루를 보내고나니 무언가 아쉽게만 느껴졌다. 「새 것은 새 부대에 담아라」는 말씀처럼、「한국에서의 사고방식은 버리고 이국땅에서 새 사람 만나 새 사상을 가져야 할 것같은데…」하고 사목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주님! 나날이 새로운 사람되게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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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산다는게 편할때도 있지만은 불편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것은 아침은 굶고 점심은 미국 식당에 가서 모르는 음식시켜 먹자니 불안하고 서글프게 느껴질 것 같아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평생 처음 라면을 끓이는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서글프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미국 사람되려면 이와같은 심정은 극복해야 되겠다.
「오늘 저녁은 누구 집에 가서 얻어 먹지!」하고 염치없는 생각도 해 보았다. 하루 한끼만 먹고 사는법、아니 먹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신부는 어차피 얻어먹고 사는 팔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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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유소에서 지도 한 장을 사서 자동차로 신자 가정 다섯 곳을 방문했다. 아직은 갈곳이 많아서 좋다.
샌드위치를 가게에서 얻어먹고 모르는 길 묻고 헤매면서 교우가정을 방문하고나니 온몸이 파죽이 되어버렸다. 나와 함께 사는 미국 신부님은 온 종일 사제관에 틀어 박혀서 지내는 걸 보니 따분하고 외로워 보였다. 어찌보면 미국 신부들은 꼭 공무원처럼 사는 것 같았다. 옛날 지중해 연안을 다섯 차례나 전교 여행을 하신 바오로 사도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주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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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신문、한국신문에다 천주교회 광고를 냈다. 신부가 온 것을 알려야 하니까…. 신앙생활을 위해 제발 이 신문을 좀 보고 한국사람들、그리고 숨어있는 신자들이 자수하여 광명찾았으면!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로 오라. 내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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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영어를 잘 배우려고 많은 돈 주고 모 대학에 등록을 했다. 학교에 가보니 온통 아들 딸 같은 나이들의 젊은 유학생들로 교실이 가득차 있었다.
여기서 들은 이야기인데 영어로 말하는 꿈을 꾸면 말을 잘하게 된다고들 하던데 나는 2번이나 꿈을 꾸었는데도、유치한 영어실력에 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 보자. 미국에는 아이들도 영어를 잘하는데 말이다.
오늘 나의 기도는 바보처럼 가장 인간적인 기도를 해보자(영어를 잘 할 수 있게). 혹시 그분이 실수하셔서 내 소망을 들어주실는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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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신부님 사제관에서 셋방살이 신세 1년을 면하고 사제관을 따로 마련했다.
여기에서 집없는 자의 고충을 지금에와서야 깨닫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겨우 공동체가 형성되니 사목 활동에 뛰는 사람처럼 보였다.
「노력한 만큼 보람을 얻게 해 주신 주님 내 후임자가 기거할 자리 없어서 가슴 아프지 않게 이 집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곳이 교포들과 함께 복음의 못자리가 되어야 할텐데…」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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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말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이제 미국음식에 맛을 붙이고 TV를 보면서 함께 웃을 수 있고 미국 사람 만나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잘되니 자신감이 든다. 그런데 미국사람 다되어가나보다고 자신감을 가졌는데 「까마귀 날자배 떨어진다」더니 미국맛을 알만 하니까 한국에 돌아가야 할때가 왔다.
『미국에서 오래 살면 한국에 가서 못산다』는 선배 신부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두고 막상 떠나게 되니까 마음이 몹시 아프다. 그래도 가야지 신부는 어차피 이렇게 사는 떠돌이 인생인가 보다. 사랑하고 헤어지고、사랑하고 헤어지고…. 모두들 부디 주님안에서 건강하게 행복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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