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인가.『설마 그럴리가』라고 생각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가에 낸 세금을 그대로 착복한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가진 자에 대한 증오심에 못이겨 사설 감옥과 시체 소각장을 만들고 인육을 먹고 살인 예행연습을 하고「살인 명부」를 만든 젊은이들이 있다. 훔친 택시로 승객을 성폭행하고 암매장한 전과자가 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계획되고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시행됐으며 그러한 사건이 폭로되게 된 계기는 참으로「우연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한 사건의 성격을 따져들어가자면 제2, 제3의 세금 비리, 제2, 제3의 살인부대, 제2, 제3의 가짜 택시 운전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누구는 범인이고 누구는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범인이 될 수 있고 범행대상이 될 수 있다. 국부를 도려내면 낫는 질병이 아니라 전신에 이름 모를 병균이 퍼진 사회적 질병의 중증상태이다.
이러한 질병에 대한「특효약」이 있을까? 양심과 도덕성의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원래 도덕성이라는 정화장치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체계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고의 가치로 군림하는 것은「돈」인데 돈은 돈을 벌기까지의 모든 사연을 감추고 그 자체의 결과로 군림할 수 있는 마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라는 생각을 부끄러움 없이 내뱉을 수 있게 되며 더 나아가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회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는 무인도에서는 휴지에 불과한 돈이 이런 괴물같은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서는 비단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공감했던 것이다.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냐 아니냐는 이 괴물과도 같은 돈의 힘에 제동을 가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재볼 수 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사회, 돈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많이 남아있는 사회는 건전하고 성숙화된 사회이며 반대로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사회는 위험하고 불안한 사회인 것이다. 자본주의를 옹호했던 학자들조차도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시켜 주는 것은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돈을 지배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들은 돈을 목적으로가 아니라 일 자체의 성취에 도취된 부지런하고 창의력 있는 기업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능력에 따라 합리적으로 보상 받는 개인들, 비합리적인 관행이 없는 합리적인 사회의 건설을 내세우고 있다. 보수적 이론가로 꼽히고 있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카임도 현대산업사회를 지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직업윤리를 갖춘 개인들과 도덕교육의 책임을 담당하는 국가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뒤르카임이 도덕성의 원천을 종교집단에서 구하지 않고 국가에서 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는 현대사회에서는 종교가 세속화됨에 따라 종교가 더 이상 개개인에게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으리라고 보고, 국가가 종교적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국가에 모든 힘이 집결되기 때문이다.
모든 힘을 집결하고 있는 우리의 국가는 그간의 권위주의 정권이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그 권위를 잃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이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들은 바로 국가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써 그야말로 반국가적 차원에 이르고 있다. 세정을 담당한 공무원의 세금 횡령, 살인범들의 사설 감옥 등은 국가의 통제와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시켜 줄 수 있는 위의 요소들 중에 우리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라도 있는가. 사회의 오물에 정화조는 없는 것일까? 당연히 정화장치로써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교회에 기대를 걸게 된다. 특히 국가에 대한 기대가 약할 때는 교회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기대를 입증이나 하려는 듯 세계에서 가장 신자 수가 많은 대형 교회가 있는가 하면 동네마다 산골 구석까지 십자가가 퍼져 있다. 그 많은 교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왜 점점 도덕 불감증의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교회가 세속의 가치를 뛰어넘는 도덕적 가치를 제대로 만들어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 이슬을 맞으면서 열심히 기도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기도 내용을 들어보자. 입학시험 합격, 직장에서의 승진, 사업의 번창, 입신양명 등 세속적 경쟁에서 남보다 한 발 앞서가기 위해 하느님의 힘을 빌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십자가가 아무리 많이 있고 교회가 아무리 많아져도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의 회복과는 별개의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의 청산과 함께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권위도 같이 청산되고 말았다. 스승의 권위도 국가의 권위도 교회의 권위도 다 해체된 상태이다.
이 해체된 상태를 회복하려면 새로운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권위 회복을 위해서는 각 집단의 지도자들의 도덕적 각성이 시급하다. 진정한 권위는 존경에 의한 자발적 복종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못 가진 자보다는 가진 자가, 권력자가, 성직자가 더 많은 반성과 노력을 통해 권위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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