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화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진실에 관한 바른 인식, 즉 지식(知識)이다. 고대 중국과 인도 그리고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찬란히 꽃피었던 여러 문명들이 온 생애를 바쳐 공부에만 몰두한 학자들에 의해서 닦아진 높은 수준의 지식과 그 지식을 활용하는 엘리트 집단에 의해서 이룩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식이란 대자연 삼라만상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따라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살다 죽어가는 그 자체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나 불멸의 영혼에 대해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 지식은 오로지 바로 보는 눈과 경험을 토대로 해서 얻어지며 거기에는 반드시 반성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대학은 바로 그와 같은 원초적인 연구를 하는 곳이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연구가 침체하거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쓸만한 지식이 말라 없어지고, 말하자면 머리속이 텅빈 진공상태가 초래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사회는 무질서해지고 무례해지고 가치관이 뒤집혀 말하자면 문화의 미개상태로 빠져들고 만다. 그러한 처지에서 인간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사람들은 우왕좌앙할 수밖에 없는데, 그 책임은 바로 대학과 대학인에게 지워지는 법이다.
옛날 파두이에 대학이라는 특수한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것이 존재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든 동료 인간들이 참다운 지식을 얻게 되고 그로 인해서 무엇이 착한 일이고,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를 알게 하며, 나아가 착하고 어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데 있었다.
그렇다면 연구란 무엇인가? 「연구」를 간단하게는「조사하고 생각하는 일」이리고 말한다. 그러나 더 깊이 새겨보면 연구란 우리의 감각과 직관에 의해서 사람의 마음이나 자연현상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런 것들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혀내는 지적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연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사실들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철저한 검색이나 실험을 수행하는 일이기도 하며, 나아가 이미 받아들여진 학설이나 법칙을 비판하고, 그와 같은 지식의 실용화를 도모하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연구의 정의를 이와 같이 새삼스럽게 되새기고 볼 때 연구의 목적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립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일은 과연 사람들이 연구를 수행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유래하며, 연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라는 명제일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참다운 연구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진선, 미를 사심없이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연구는 필연적으로 진실만을 추구하고 거짓과 오류를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무질서한 사회에서는 때로 거짓과 진실이 외견상 양립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연구, 그중에서도 특히 창의적 연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휘되는「능력」은 직관, 계시적 착상 즉 영감(靈感), 얼핏 보아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독창적 발상 그리고 집념스러운 실천적 노력으로 파익되는데, 이와 같은 몇가지 형태의「능력」이 섬광처럼 번쩍이는 배경에는 항상 밝은 생각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고 그것이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좋은 연구성과는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급인 것이며, 연구성과가 두드러지게 개성적이고 독창적일 때 사람들은 그것을 천재적인 업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심오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생각이 거리낌 없이 샘솟듯 떠올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많은 고뇌에 찬, 그러면서 무엇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하는 사람은 일상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간단한 일까지도 무심히 넘겨서는 안되며, 끊임없이「왜」를 되풀이 하는 일에 깊숙이 젖어 들어야 한다. 갈릴레오가 흔들이 운동의 동시성을 발견하기 오래전부터 피사의 성당에 길게 매달린 등불은 어김없는 동시성을 가지고 흔들리고 있었으며, 뉴톤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기 전 아득한 예부터 천체는 질서속에서 운행되었고 그런 속에서 무르익은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연구를 수행하는데는 당연히 시설과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질서정연하게 정리된 문제의식, 가치없는 반성과 어려운 장벽을 몇번이고 넘을 수 있는 의지력이다. 소크라테스는『신은 결코 최상의 것을 헐값으로 쉽게 사람에게 주지는 않는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참다운 가치가 있는 사리에 대한 사랑과 세속적 혼미와 공리주의적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많은 대학들은 아직도 해묵은 제도와 경영상의 후진성, 문제의식과 인적구성의 취약성, 그리고 거기에서 연유되는 연구의 침체와 비전의 흐림등 여러가지 어려운 내적외적 여건에 몸살을 앓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대학인들 스스로도 시대의 풍조에 떠밀려 학문외적 일상사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기초학문의 퇴조와 그에 따른 기초연구 기피현상은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 기초연구없이는 응용과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만인이 아는 사실이다. 적어도 대학사회에서만은 기초연구가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하고 기초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빛을 보게 되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말을 잇는다. 『인생은 짧고 할 일은 많다. 기회는 놓치기 쉽고 실험은 속이며 판단은 어렵다』. 대학에서 무엇을 할 것이며, 그것은 누가 판단할 것인가? 대학에서 누가 연구할 것이며, 누가 공부를 할 것인가? 그 대답은 자명하다. 인간에게 참된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자연의 의미를 탐구하고 진리를 깨닫는 일인데 그 깨달음은 오로지 면학과 연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기에 대학은 마를 줄 모르는 학문의 젖줄이 되어야 한다. 대학과 대학 주변에서 구상되는 모든 일,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모든 기구와 조직과 노력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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