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가사를 제대로 외워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되질 않는다. 노래방 기계 덕분이다. 그렇더라도 그「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만큼은 외워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노래를 정확하게 언제 배웠는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려서부터 불러왔다. 웬만해서는 가사를 잊을 수 없을 만큼, 수도 없이 많이 불렀을 것이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아! 우리가 지금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 통일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향민들의 모임에서건 대학생들의 개강모임, 종강모임에서건, 이 노래는 열심히 애창된다. 대개는 과열 분위기가 되기 마련인 남북간의 스포츠 대결의 장에서도 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분위기는 숙연하게 바뀌게 마련이다. 묘한 힘을 갖는 노래다.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분단의 현실에 대한 망각으로부터 돌아오게 된다. 사실 분단을 잊고 사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해야 할지도 모를 우리로서는 이 노래의 역할이 더욱 소중한 셈이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바쁘고, 민족 모두의 삶보다는 개인의 눈 앞의 삶이 더 앞선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6ㆍ25나 광복절, 명절이 되어 방송 기자들이 거리로 나가 사민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통일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곤 한다. 꼭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십중팔구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요,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자나깨나(?) 국가와 민족만을 생각하는 달변의 정치가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현상은 이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남북의 창」이라든가「통일전망대」와 같은 텔리비젼 프로그램을 통해서 북한의 방송 내용을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다. 북한의 동포들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목청을 높이는 내용은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겠다는 맹세와 함께 통일에 관한 주장이다.
그러나 남과 북 할 것 없이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한결같이 목청을 돋우고 있으면서도,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진정 그것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의견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그동안 통일을 바라면서도, 또 통일을 주장하면서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통일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말하자면, 통일을 바라면서도 정말 실현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통일 대비 노력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두 해 전에「한반도 통일과정에서의 방송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언론학회 회장이었던 서강대의 최창섭 교수께서 수고를 자청하여 이 분야에 관계되는 국내외의 학자들이 망라되고, 여기에 더하여 북한의 학자들까지 참석하는 내실 있는 학술모임을 계획했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참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북한 학자들이 갑자기 참가할 수 없게 되었고, 장소를 주선하기로 되어 있던 북경 측과의 이견으로 인하여 행사는 부득이 홍콩에서 치뤄질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의 방송의 역할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함께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방송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일반론적 기대가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되었다. 논의과정에서, 독일의 통일과정에 있어서 방송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과정에서의 방송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하는 재미 있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어차피 방송 운영체계와 수신기의 소유와 이용 방식이 다르므로 방송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한 독일 학자의 주제 발표 후에 토론자로 참석한 한 우리나라 교수님의 차례가 되어서였다.『…독일이 통일되고 난 지금, 독일 국민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한참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난 뒤에 독일 교수의 대답이 이어졌다.『…행복하다고 느끼질 않습니다. 최소한 아직까지는…』독일 교수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서독은 우리보다 훨씬 탄탄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고, 상당기간의 구체적인 통일 대비 노력을 기울여왔었는데도 불구하고, 통일된 독일은 많은 독일 국민들에게 기대했던 것 만큼의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 것 같다.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는 기본 원칙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통일에 앞서 준비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 그리고 준비를 위한 시간이 의외로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걱정이 생기는 것은 필자가 통일문제에 관한 비전문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난 후에 누군가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질지도 모를 일이다.『한국이 통일되고 난 지금, 한국 국민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주저함이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그럼요. 행복하다마다요』
우리 민족 모두에게 행복한 통일은 노래만으로 얻어지지 않을 것 같다. 미리미리 고통을 분담하고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투자와 준비가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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