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 학생체벌에 대한 학부모의 강한 항의를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한 한 중학교 여교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체벌이 과연 「사랑의 매」인가,「교사의 폭력」인가, 체벌을 가한교사를 학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여교사는 죽음이외는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이 전해 없었던가하는 점들이다.
우리의 교육환경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에는 늘 회초리가 있었다. 서당에서 종아리를 걷어올리고 매를 맞는 조선시대의 풍속도는 쉽게 보아왔고 또 부모가 회초리를 깍아 자신의 스승에게 바친 옛이야기도 들어 알고있다.
그리고 기성세대들은 초중고시절 체벌을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만큼 우리의 교육풍토는 체벌에 익숙해져왔다. 그래서 교직을 「교편(敎鞭) 잡는다」 즉 「매로 때려서라도 교육을 시킨다」는 말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서구의 진보적인 교육사상의 영향으로 학교교육에서 체벌을 인정할 것 인가하는 문제가 강하게 제기되고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결론이 없는 가운데 그동안 체벌로 인한 소송사건까지 있어왔다.
이로인해 교사들중에는 후유증을 두려워한 나머지를 체벌을 전혀 가하지 않는 부류와 교육적인 측면에서 「사랑의 매」를 때리는 부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바로 이 「사랑의 매」가 도를 지나치거나 감정의 개인으로 「미움의 매」가 될 때 후유증을 낳기 마련이다.
이번 여교사의 죽음은 이 「사랑의 매」가 지나쳐 학생의 팔뼈에 금이 가고 뒤늦게 학부모에게 이를 사과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끝내는 죽음으로써 사죄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한다.
과도한 체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교사에게 있다. 그러나 그 교사의 사죄를 받아주지 못한 학부모에게도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수업시간에 교사몰래 친구들과 만화카드놀이를 하다 벌을 받게된 자기자식의 잘못도 헤아릴 줄 알아야한다. 만일 교사가 상습적으로 폭력을 사용해왔다면 문제는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교사의 순간적인 실수였다면 그 실수를 용서해 줄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여교사는 금년 스승의 날에 교육감 표창을 받을 정도로 학생지도의 열성적이고 모범적이었으며 고3딸과 고1아들에 남매를 둔 어머니였다는 사실로 미루어볼때 결코 폭력교사는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이 여교사가 「독실한 천주교신자」라는 대목이다. 우리는 그가 죽음 직전까지 얼마나 번민하고 가슴 아파했을까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자살이 용납될 수 없는 우리 교회의 가르침을 새기지 않을 수 없다. 40데 후반의 지성인 신자인 그 여교사의 문제는 과연 신앙 안에서 해결될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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