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60여일 앞둔 요즘 정가가 무척이나 어지럽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꼭 구멍난 나룻배가 정처없이 흘러가듯 위태롭기 짝이없다. 언제쯤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언제쯤 부상할 것인가.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말도 말짱 헛소리에 불과한듯 5천만을 헤아리는 국민은 마치 있으나마나한 존재처럼 무력하기 짝이없다. 욕먹을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중립선언과 민자당 탈당으로부터 비롯된 정계의 회오리 바람은 이른바 TJ의 민자당 탈당에 이어진 5명의 민자의원 탈당, 그리고 민자당 탈당 의원들의 신당 창당으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모처럼 호기를 맞은 야당들의 움직임도 만만치가 않다.
어떤이는 최근에 나온 정치 가상소설「청와대를 향하여」가 그대로 들어 맞는 것 같다고 진단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정치 가상소설을 놓고 현실을 짜 맞추어보는 놀음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의 정치상황이 어지럽긴 매우 어지러운 모양이다.
최근의 정치판도를 놓고「진짜 민주화」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 보는 입장도 많다. 실천여부를 떠나 대선을 앞두고 모처럼 중립내각이 형성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긍정적인 입장에서만 볼 때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또다른 관측에서는 비관론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라의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이 마당에 대통령으로 뽑고 싶은 인물이 없다는 점은 걱정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대권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는 후보들의 입장에서 볼 때「괘씸죄」에 해당하는 발언임에 틀림없겠으나 이같은 걱정에 동참하는 국민들은 모르긴 해도 상당히 많은 수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국민들의 불신은 대권주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소속한 정당자체에 대한 불신일수도 있다. 물론 그 불신에는 충분한 경험이 바탕으로 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불씨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정치라는 사실을 우리 국민은 충분히 경험을 해왔다는 얘기다.
이같은 상황을 전제로 한다면 오늘 우리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할 국면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국가의 장래를 내가 책임진다는 새로운 각오가 지금이야말로 절실히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일은 정치인에게만 짐지워진 사명이 아니다. 그건 우리 국민 모두의 사명이자 책임인 것이다.
그 사명 가운데 첫째가 바로 영웅 만들기이다. 영웅은 흔히 만들어진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영웅탄생은 힘겨운 작업이라는 말일 것이다. 역사속에 등장하는 불세출의 영웅들도 주변의 여건이나 주변의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다. 세계역사를 통해 시대가 만들어낸 영웅도 심심치 않게 우리는 보아 왔다.
그 영웅을 가장 잘 만들어내는 민족 가운데 일본을 대적할 나라는 없을 것이다. 남의 나라 역사를 그들보다 더 잘 알 수야 없겠지만 바로 10수년전 일본의 대표적 지성이자 작가인 미우라 슈몽씨의 입을 통해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다. 당시 그는 다나까 전 일본수상을 가장 비근한 예로 들었고 일본의 역사는 영웅을 만들어내면서 반복이 되었을 것이라는 농담도 곁들였다.
잘 아시다시피 일본의 다나까 수상은 소학교를 겨우 거친 말하자면 가방끈이 짧아도 한참이나 짧은 학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수상이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이 악조건은 상대 정치인들의 적절한 이용물이 되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불리함을 이기고 그가 수상이라는 자리에 어렵사리 올랐을 때 아무도, 정적들조차도, 그의 짧은 가방끈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국졸 학력의 수상으로 그는 오히려 영웅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영웅을 만들지 못하는 국민이라고 얘기한다. 오히려 시대가 만들어낸「영웅」조차「범인(凡人)」으로 끌어내리는 민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식민사관의 유산일 수도 있고 우리 스스로의 판단으로 내린 평가일수도 있다. 어지간히 맞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오늘까지 이어진 우리네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정말로 우리는 영웅을 제대로 한번도 모시지 못한 것 같다.
일본인들이 불필요할 만큼 과장된 영웅을 만들어 내는 반면 훌륭한 인물도 나무위에 올려놓고 오히려 흔든다는 우리. 상대적인 비교가 무리이긴 하지만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여지는 있지 않겠는가.
대통령 감으로 완전한 사람을 향후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 눈에 띄지 않는다면 이는 우리가 만들어 내야할 일이다.
「대통령감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처음부터 대통령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들 받드는 주변 사람들이 메우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이 채워줄 일이다.
진정 우리가 해야할 일은 대통령 감이 없다는 한탄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해야할 내 몫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이 막막함, 답답함, 그리고 위기감의 출처를 정치와 정치인 속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찾아보자고 권고하고 싶다.「잘난 국민」들이 넘치는 사회에「못난 정치」가 판을 칠 수는 없을 것이다.
밝은 미래인가 어두운 내일인가. 그것을 선택하는 일은 바로 우리의 두번째 사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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