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초겨울이다.
여름내 푸르른 위용을 자랑하다가, 온산을 만산홍엽(萬山紅葉)으로 수놓던 나무들도 그 잎새들을 모두 흙으로 돌아가게 하고 벌거벗은 채 맞을 한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삼라만상은 대자연의 순리대로 생성하고 번성한 후 이처럼 쇠락해 가는 것이다. 이 우주의 대법칙앞에는 인감이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인간도 결국 죽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전도서의 말대로 모든 것은『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절대 허무로 귀착되게 마련인가.
격동하는 세계속에서, 나날이 바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대인들은 어느 사이에「죽음의 문제」를 접어두고, 뇌리에서 지워둔 채 살아가는게 보통이다.
그러나「죽음의 문제」만은 누구라도 간단히 생각해 버린다거나 피해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 문제와 진지하게 맞부딪쳐 대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진정 이 문제는 파스칼의 말대로,『신음하면서 추구해 나가야 하는』는 신비이다.
그것은 철학자들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인간은 사실상「죽음에로의 존재」이기 때문이며 죽음을 떠나서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그 모습이 스산하고 음산해 보이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색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확고한 가르침은 찬란한 빛과 행복이, 인간 본래의 목적이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해 인간 앞에 전개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성인(聖人)들이 성인이 되게 한 것도, 순교자들로 하여금 획기적인 영적 변화를 일으키게 한 것도 역시 죽음이라는 육체의 결정적 변화가 필요했다.
신앙인으로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사실 부활과 함께 죽음에 대한 가르침을 체득하고 이를 정신으로, 몸으로, 생활로, 구현해 내는 데 그 요체가 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써 이미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그분이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셨으며 종국적으로 이 우주전체를 완성해 내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희망적으로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과업을 기쁜 마음으로 성취해 나가면서 어두운 세력들과 맞서 투쟁해 나갈 수 있다.
교회는 이 조락의 11월을 위령성월도 정했다. 이 달에 우리는 삼라만상의 단순한 일원이 아닌 인간으로서 제2의 죽음, 상상을 초월하는 무서운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죽음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색하면서 십자가위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신 예수를 바라보며「피를 부어서 영(靈)을 취하라」는 옛 수도원의 격언대로 참 삶의 길을 걸어갈 결심을 새로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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