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은 아무일 없이 지나갔다. 이날따라 우리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깨끗해 보였고 단풍과 낙엽으로 만추의 정취를 한층 더 실감케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도 세상종말의 조짐은 보도되지 않았다.
92년 10월 28일 휴거(攫擧)와 함께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웠던 자들의 주장이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당초부터 허위로 끝날 것임이 예고된 일이다. 그것은 이번의 종말론주장이 처음있는 일이 아니고 과거부터 국내외에서 수없이 주장되었지만 한번도 적중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종말의 날은 결코 인간의 계산이나 지례로는 알아 맞출 수 없는 인간능력밖의 일인데도 구태여 그날을 셈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와 교만을 이번에도 되풀이해 보여주었을 뿐이다.
10월 28일 휴거와 종말론 주장은 무위로 끝났지만 이 주장이 끼친 후유증과 상처는 심각하다. 무엇보다 먼저 염려되는 것은 추종자들의 거취문제이다.
알려진 바로는 현재 국내에는 50여개 종단에 2만여명의 추종자가 있으며 이들중 10월 28일 휴거될 것을 믿고 종교활동에만 몰두한 사람이 5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청소년ㆍ주부ㆍ소외계층의 근로자들도 학교와 가정과 직장을 떠나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휴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불상사를 저지르거나 혹은 당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이들을 그 집단에서 빼내 가정과 학교와 직장으로 복귀시키는 일이 가장 급한 일이다. 검ㆍ경찰의 강력한 대응과 가족들의 협력 그리고 사회의 지원이 긴요한 상황이다.
다음으로 이번과 같은 시한부 종말론 주장이 재현되지 않도록 대처방안을 강구하는 일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허위 종말론주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우리의 주변을 정화해야 한다. 이 일은 사회전체가 특히 각 종교가 앞장서 해야 할 일이다. 그중에서도 우리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교회가 참으로 어머니답게 어떤 처지의 자녀라도 차별없이 품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자녀들에게 성서를 비롯한 정확한 교리지식과 신앙인으로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교육시켜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우리 교회가 이 두가지 일을 제대로 행하지 못해 허위 종말론이 출현하고 그 추종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면 우리로 일단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MBC TV가 금년 9월초 전문사회조사기관을 통해 서울시민 5백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가 92년 종말설을 믿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들중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은 낮을수록, 그리고 종교별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중에서 종말설을 믿는 비율이 놓게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가톨릭신자 가운데 92년 종말설을 믿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8.3%나 되었다는 보고는 참으로 충격적이며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이를 볼 때 시한부 종말론주장은 결코 멀리 있지 않고 먼데서부터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결국 무위로 끝난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은 우리 교회를 뼈아프게 반성하고 채찍질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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