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낙엽으로 대변된다. 남북으로 긴 우리 강토는 온대지역에 속해 네 계절이 분명하여 철바뀔때 마다 새로움을 더한다. 낙엽 뒹구는 소슬한 가을은 삶이 시들해지고 마음이 사뭇 무디어진 보통사람들에게도 잠시나마 삶이나 생명 등에 대해 생각케한다. 11월은 일생에 비기면 황혼녘 노년기에 해당된다 하겠다. 교회력으론 한 해의 전례가 11월말경 끝나기에 우리 믿는 이들은 한 달 먼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셈이 된다. 아울러 한달 빨리 새해를 맞게된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지는 나뭇잎을 바라본 마음은 쓸쓸함、고적함、아쉬움、서글픔 등 회색빛 느낌으로 공통점이 모아진다.
낙엽은 가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철에 곱게 물들고 미련없이 조락하는 잎들과는 달리 햇살 눈부신 초여름 초목들이 떨기떨기 무성한 때 비라도 한 차례 뿌리고나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채 길바닥에 뒹구는 빚바랜 가로수 잎들을 만나게 된다. 한편 새싹이 돋아나는 이른 봄까지 퇴색한 마른 잎을 차마 지우지 못함에서인지 묵은 잎을 매단채 처연한 몸동작을 보이는 나무들도 있다.이들 4월 봄날에서야 잎을 떨구는 참나무 등은 알고보니 눈과 새순이 몹시 약한 것들로 냉해를 입기쉬운 식물들이라 한다. 겨울 내내 어린 새순을 보호하기 위해 매달려 있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자연의 신비에 자못 숙연케된다. 11월 위령성월은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기까지 이와같은 역할을 강행한 모든 이들이 기억되는 때이기도 하다.
흔히들 경험케되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케되는 것이다. 의례 홀로 저 잘나서 성장한 것으로들 생각하나 부모의 애간장을 다 녹이며 성숙케되었음을 부모가 되어서야 뒤늦게 깨닫게된다.아이들을 키우면서 비로소 까마득히 잊고만 어린 시절 철없던 짓거리들이 새로운 부끄러움으로 되살아난다. 이미 주름살 잡히기 시작한 장년의 아들을 앞에 두고 퉁퉁해진 아들 외양이 대견스럽고 민음직스러운 양『저 아이가 철이 들어 저리 되었나 보오』하는 노인의 지나가는 말이 새삼 의미있게 다가온다. 팔에 안기운 손주를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마음은 이미 훌쩍 흘러가 버린 세월을 잠시나마 잊은듯 아들이 보이던 짓거리를 손주가 꼭같이 반복함에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착각에 젖어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교적 사고에 젖어있던 우리 선조들은 내세를 믿지는 않았지만 아들 손주로 이어지는 끈질긴 핏줄에서까지 생명의 영속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사고로서 영생의 또 다른 개념을 이해한듯도 하다.따지고 보면 오늘의 내가 존재하기 까지에는 신비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긴 흐름의 연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엉뚱한 그리고 쓸데없는 상상에 속하는것이겠지만 우리 아버지、할아버지、그리고 그 윗대의 할아버지께서 성년(成年)에 이르기전 병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일찍 세상을 뜨셨다면 오늘에 나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점은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오늘과 내일 그리고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꽤 오래 전으로 기억되는 한 신부님의 미사강론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대강을 옮겨보면 우리가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생명을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은 하느님께 귀속된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의 생명 그 자체는 우주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로서 한번뿐인 것이며 확률로서도 분모가 무한대인 분수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비록 현행법상 죽을 죄를 지은 이들이라해도 사형은 한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그로 연유된 미래를 거부하는 것이기에 우리들은 두려운 것이다. 한 개인이 저지른 잘못과 더불어 그 개인을 통해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질 아름답고 선하고 착한 일들과의 비중을 함부로 저울질할 능력이 여하튼 우리에겐 없다.
그런데 사형제도와 별개로 오늘날 더욱 엄청난 살생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기도 하다. 전혀 방어 능력이 없는 작고 미약한 생명들이 그들 부모의 동의 속에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있다. 더욱 무서운 현실은 전혀 죄의식도 없이、임신중절을 사회 분위기가 자연스레 몰고가는 듯하다. 이러한 사회 안에 몸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공법이며 유산을 시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범죄행위이다. 인구폭발에 대한 우려에서、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서란 각종 미명(美名)을 붙여가며 그것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결코 그리 되어서도 안된다. 이 계절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드는 것이기도하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온갖 어려움을 감수해야했던 선조들에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큰 잘못임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그저 뉘우침이나 후회로 끝날 일은 아니다. 이 비인간적인 살생은 지금 당장 멈춰져춰야 한다. 더 이상 방관되어서도 안된다. 생명 그 자체에 손 댄 것부터 신성모독에 드는 것이며、단지 한 생명을 지운 일에 멈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미래와 꿈및 희망과 그 자체를 송두리채 거세하는 전율치 않을 수 없는 용서받지 못할 행위이다.
낙엽 뒹구는 11월、우리는 생명의 고귀함과 신비를 되새기며 그 거룩함과 엄숙함에 숙연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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