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無所有)의 자유」라는 말을 흔히 쓴다. 무소유의 자유는 불교적 냄새가 더 강한 덕목이다. 그 의미에 대한 이해의 폭이나 공감대는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자유를 누리기는 참으로 어려운 진리가 아닐수 없다. 득도(得道)한 고승(高僧)이나 영성적으로 자기관리가 용이해진 수도자 등 특수신분이 아니고선 「무소유의 자유」를 완벽하게 누릴수있는 사람은 흔치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기사 인간의 욕심만큼 대단한 것도 없다고 한다. 한도 없고 끝도 없다는 인간욕심의 그늘진 단면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 의가 뒤틀리고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서로 상체기를 내는 일들이 실제상황으로 발생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반면 미물인 짐승은 자기 배가 부르면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린다. 포식한 사자나 호랑이는 바로 눈앞에 토끼나 사슴 등 먹이가 지나가도 본체만체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진 모습니다. 인간을 일컬어 짐승만도 못한때가 있다고 비유하는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는 아마도 이 뜻이 포함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유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기쁨 그 자체다. 그러나 소유본능만큼 인간을 동물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고 한다. 지나친 소유본능을 동물적인 것으로 비유하는 인간의 이 자기진단이야 말로 아이러니 그 자체가 아닐수 없다. 소유개념이 정직한 쪽은 오히려 동물이기에 하는 말이다.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변모시키는 소유본능은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등 물질적인 개념이 대종을 이룬다고 할수 있다. 결국 벌면 벌수록 더 벌고 싶은 속성을 지닌 그 돈이 인간의 소유본능을 인간이하의 것으로 변모시킨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돈을 번다는 일은 좋은 일이다. 돈이 있어야 생활을 할 수 있고 또 돈이 있어야 무슨일이든 할 수가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웃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돈을 정말 필요하기 짝이없는 존재다. 물론 돈과 무관하게 남을 도울수가 있는 일도 허다하지만 약간의 돈 만으로 인간의 생명을 살릴수 있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목격되고 있다.
땀흘려 번 돈을 값있게 쓰는 사람에게서는 돈의 힘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많고 적음을 떠나 자기의 것을 나누는데 인색치 않은 사람들은 분명 「값있는 돈쓰기」의 행복과 재미를 아는 사람들 일 것이다.
최근 아프리카 소말리아 난민들을 향해 모아지고 있는 작은 사랑의 마음들은 돈쓰는 행복과 재미를 알고 있는 신자들이 의의로 많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아니 그들은 돈을 값있고 쓰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식모금이 신언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내온 사람의 정성들은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소말리아가 아니더라도 우리 신자들이 값있는 돈쓰기를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는 이미 본보를 통해 수도없이 입증이된바 있다.
지난 20여년간 본보를 통해 보도된 각종 호소들은 그 호소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사랑으로 많은 열매들 맺어왔다.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로 치달았던 70년대, 80년대를 수놓은 본보의 사랑 나누기는 정말 값지고 보람 있는 교회에 몫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본보는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하나의 장을 마련해 왔다. 어쩌면 사랑을 나눌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연습을 시켜왔다고 감히 말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본보를 통해 사랑이 교차된 횟수를 헤아리자면 아마도 밤을 꼬박 뜬눈으로 밝혀야 할지도 모른다. 「사랑의 징검다리」, 그 기능만큼 신문의 존재를 신명나게 느끼게 해주는 일도 없을것이다.
당장 수술비가 없어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심장병 어린이에서부터 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메던 총각,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짐을 소년가장, 돌보는이가 없어 거리에 나 앉게된 할아버지…본보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한 이 사랑의 사연들만 묶는다면 아마 본보는 교회단체가 주는「사랑대상」을 타고도 남음이 있을것만 같다.
이중에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신의 신장하나를 망서림없이 떼어 나누어준 사람까지 있었기에 하나 말이다.
본보의 나눔에 있어 하나의 특징은 대가가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한숫가락의 밥을 모은듯이 모은 사람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진리를 본보의 사랑나누기는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장바구니에서,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사랑과 절약한 용돈에서 만들어진 사랑은 작은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거로써 보여준 셈이다.
이번 소말리아 난민, 특히 죄없는 어린이들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신자들의 자발적인 반응 역시 작은 사랑들의 자발적인 반응 역시 작은 사랑들이 모이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경험에 의하면 그 사랑은 또다시 위대한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반면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상대적으로 빈곤하기만한 「큰 사랑나눔」에 대한 아쉬움을 역시 남겨줄 것이다.
가진것을 나누는데 있어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적당한 만큼만 소유하고 잉여분을 즐겁게 나누는 사회가 된다면…생각만해도 신이 저절로 난다. 우리 모두 하루 한번쯤 생각해보자.『나는 죽을때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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