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문제를 둘러싸고 나라안이 소란스럽다. 국회에서는 민자, 민주, 국민 등 3당 의원들이 서로 고함과 삿대질을 해가며 자기네 주장을 관철시키려 싸우고 있고 밖에서는 농민들이 집회를 갖고 과천의 정부청사를 점거, 집기를 부수며 항의농성하는 소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對농민, 3당간의 분쟁은 추곡수매가와 수매량에 대한 의견 때문이다. 정부는 금년산 추곡수매가를 5%인상에 8백 50만섬을 사들이겠다는 방침이고 이에 반해 농민들은 15%인상에 1천1백만섬을 수매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추곡문제를 둘러싼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한차례씩 때만되면 벌이는 연례행사처럼 돼있다. 왜 매년 꼭같은 싸움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농민편에 서서보면 적정 수매가에 전량을 수매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추곡을 생산하기까지 농민들은 일소부족과 각종 병충해ㆍ농약공해에 시달려 왔다. 뿐만아니라 매년 빠짐없이 찾아오는 한발이나 홍수ㆍ태풍 등의 피해를 극복해야한다. 그래서 대풍을 이루면 그 기쁨도 잠시뿐이고 곧바로 수매문제로 골머리를 썩어야 한다. 추곡을 적게 생산해도 걱정이고 반대로 대풍을 이루어도 걱정인 것이 농민들의 입장이다.
정부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추곡가인상이 전체 물가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추곡을 생산한 농민수보다 이를 사먹어야 하는 전체 국민의 수가 월등히 많다는 사실을 간과할수 없을 것이다. 또 정부로서는 몇년전부터 전국의 정부미보관창고가 만당이 될 정도로 누적된 재고물량 처리도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다 쌀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등지의 끈질긴 압력에도 대처해 나가야 하는 정부로서의 고충과 어려움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러한 농민과 정부의 서로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사항을 생각해볼수 있다.
하나는 추곡수매량을 사전에 조정하는 방안을 세우는 일이다. 이 사전조정이 결코 농민의 생산의욕을 감퇴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농토에서 매년 대풍작이 계속돼 재고가 늘어나고 수매가와 수매량시비가 되풀이되면 이는 결과적으로 농민들에게 의욕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대전제로 삼아야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현대에 있어 또 앞으로도 식량은 자국을 지킬수 있는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밀밭을 모두 버린 어리석음으로 지금 농약에 젖은 외국산 밀을 사먹지 않으면 안되는 과오를 결코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하나는 현재 농수산부내에 두고 있는 수매가 결정기구를 국무총리나 대통령산하에 곡가심의위원회 등을 두어 각계층의 의견을 고르게 반영, 결정함으로써 더 이상 농민과 정부가 충돌을 빚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땀흘려 열심히 일한 농민들에게서 적어도 한숨과 원성은 나오지 않도록 정부당국의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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