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무수히 많다. 자연의 모든 것 예쁜 마음씨, 성실하게 사는 인간의 모습….
이에 아름다운 손도 참 많다. 겸손한 자세로 헌금바구니에 넣는 과부의 손, 엄마의 가슴을 더듬어 젖을 찾는 아기의 손, 끝없이 묵주알을 굴리는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손….
몇년전 나는 가장 아름다운 손을 발견했다. 아름다운 사제의 손을….
흑산도 성당에서 공소 실습중이었다. 서울에서 몇분의 손님 신부님들이 휴가차 내려오셔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주방 아줌마가 안계신 곳이라 내가 식사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집에서 한번도 해본적 없는 음식이 잘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식사때마다 그 중 한분이 늘 주방에서 함께 음식을 준비해 주셨다. 어색하지 않은 칼질 솜씨, 그 뭉툭한 손으로 밥물을 재는 모습, 그 손은 정말 아름다운 손이었다. 식사가 끝나면 서로 순서라도 정했다는 듯이 상을 번쩍 들고나서 말끔하게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행주까지 뽀득뽀득 빨아 널어 놓는것을 보고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몇날이 지나고 되돌아가시게 되는 날 아침 배를 타기 위해 출발하려는 순간 신자한테서 병자성사를 부탁하는 전화가 왔다. 나는 본당 신부님도 안 계시고 또 손님 신부님들도 떠나실 시간이라 대충 그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러자 신부님 한 분이 병자성사에 내 집 신부, 남의 집 신부가 어디 있냐고 하시며 성사 가방을 찾아 길을 나서는 것이었다. 둘다 낯선 길이라 헤매며 그 집에 도착해 성사와 노자성체를 준비시키고는 나는 마당에 나와 가족들과 이야기하게 되었다.
성사를 받으시는 분은 오랜 선원생활로 마약까지 복용하셨던 분으로 연세는 오십도 안되었는데 마치 할아버지 같았다. 오랜 냉담 끝에 병자성사를 원하신 분이었다. 고백성사가 끝난뒤 노자성체를 영할 때 나는 가족들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때 가슴이 콱 막히는 감동을 느꼈다.
『보라,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라고 하면서 두 손에 받들어 모셔진 작은 성체, 그리고 성체를 바라보는 정성스러운 사제의 눈빛, 참회의 눈물을 흘리시는 병자…. 나는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손, 사제의 손을 느꼈다.
어느 누가 죽어가는 이에게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있으며 진정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세상의 어느 손이 죽어가는 이에게 저토록 절실하게 예수님을 모셔다 드릴수 있으며 어느 손이 저 손보다 아름다울수 있을까? 성체를 정성스레 모신 그 손은 내가 여태 느껴보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손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배안에서 기차안에서 중간 중간 성무일도를 펼쳐 기도하실 때 내가 슬그머니 훔쳐보던 그 손 그리고 그 신부님들의 모습은 아직도 내 신앙생활의 활력이 되곤한다.
지금도 노동사목과 교도사목을 하시면서 가장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보라 천주의 어린양…』을 외치며 성체를 두손에 받들고 있을 그 사제들의 아름다운 손과 아름다운 삶을 위해 늘 기도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