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보면 여성에 관한 얘기가 아주 많다. 우선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창부였던 막달레나는 주님으로부터 삶의 고통에서 위로받고 사랑을 실천한 대표적 여인이다. 이것은 여인의 삶과 사랑에 대한 중요한 방향을 암시한다.
오늘날은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어 인생의 고통이 예전보다 크게 줄어(?) 들었다고 한다. 일손을 덜어주는 온갖 편리한 기계들 많은 여가시간들, 직장생활의 참여 등으로 보다 인간답게 살아 갈 기회가 많아졌다.
봄 가을 행락길, 유흥업소에도 여성으로 가득 차 있다. 과거 이보다 더 큰 사랑을 여지껏 받아본 적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가장 사랑받아야 할 여인은 누구일까?
내가 여섯ㆍ일곱살 때쯤 덕산동 우리골목의 앞집에 한 언니가 살았다. 그녀는 나보다 열살정도 많았는데 그 때 그녀는 침산동에 있는 방직공장에 다녔다. 어느 땐 캄캄한 새벽에 목도리를 두르고 걸어가기도 하고 어느 땐 낮엔 종일 자고 저녁때 세수하고 밤일을 가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1960년대 대구 산업화의 시작 당시 어린여성의 야간노동이었다.
그후 그녀는 같은 공장의 재단사로 있던 남자(숙련공인듯)와 동거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애기낳고 결혼식을 사진관에 가서 하였다. 차츰 70년대 대기업에 경제가 집중되자 숙련공기술자들은 기성복에 밀려났는데 남편은 우유부단하고 성실성이 부족하여 곧 실직하였다. 좌절과 궁핍에 빠지자 그는 생활이 무질서해졌고 노름에 손을 대었다.
그녀는 애기를 들쳐업고 담요장수, 비누장수, 고물장수 등 갖은 품팔이 일을 하면서 어렵사리 어려운 인생길을 살아갔다. 무능한 남편은 한술 더떠서 폭력과 외도로 영혼까지 괴롭혀댔다. 그녀는 세 아이를 부둥켜 안고 죽음과 사투하는 의지로 버티었다.
이때 쯤, 나는 세상으로부터 너무 사랑을 받아 미국유학을 가게 되어 그녀의 소식을 더 듣지 못했다. 그후 10년만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녀의 고달픈 인생은 여전했다.
이젠 집세가 올라서 도저히 대구시내에 살수 없어 멀리 근교로 나가서 살아야 했다.
요즈음은 자주 오른쪽팔ㆍ다리가 저리고 굳어지곤한다. 몸에 식은 땀이 흥건하고 입술이 검어지기 시작한단다. 병의 조짐이었다 분명히 간암의 증세였다.
그녀는 울면서 무력한 내게 무슨 약을 먹으면 좋을지 물었다. 그녀가 쉴수만 있다면…. 허나 그녀는 고개를 심하게 흔들었다. 막내가 학교를 덜 마쳤다고 한다. 삶의 고통과 헌신속에서 살아오고 또 죽어가는 그녀야말로 사실은 가장 사랑받아야 할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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