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선진국은 왜 선진국인가」를 생각해 본다. 소득이 높기 때문에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국민소득은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동의 어느 나라처럼 우리보다 훨씬 국민소득이 높은데도 우리는 선진국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왜 그럴까? 경제라는 하드웨어가 높아도 국민의 의식 수준이 거기에 걸맞게 선진화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좀 주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아시아 지역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리더로서 부상하고 있다. 그 중에 일본은 이미 선진 7개 국에 포함되어 있으며 소위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에 싱가폴은 국민소득이 이미 1만 달러를 넘어서서 선진 경제에 가장 접근돼 있다.
이들 두 나라는 우리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비틀대며 앞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계속해서 여러 가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침체 국면을 맞이했어도 선진국 또는 선진국에 준하는 나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시아 지역 ME (매리지엔카운트) 대표자 회의가 매년 아시아 각국을 순회하면서 개최되고 있는데 필자는 한국 ME 대표로서 일본과 싱가폴에서 회의가 있을 때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다른 때는 회사 업무 관계로 이들 지역을 방문했어도 숙소는 호텔이고, 비지니스가 끝나면 떠나오기 바쁘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며, 그 나라의 사람 사는 속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ME 회의에서는 참가자들이 민박을 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 생활, 삶의 질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이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서가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고 관심 있게 살피게 된다.
2년 전 일본 나고야에서 회의가 있을 때 우리 부부가 민박한 가정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ㆍ딸 둘을 둔, 남편이 대학 교수인 아주 단란한 ME 가족이었다. 집은 2층 목조로 된 아주 작은 것이었다.
자동차가 있었지만 동네 슈퍼마켓에는 자전거로 가서 시장을 봐 오는 것이었고, 식사 때 어떻게 적지도 많지도 않게 식단을 꾸미는지 먹고 나서 버릴 쓰레기가 없었다. 화장실의 물도 손 씻은 물로 변을 흘려보내게 되어 있어 낭비가 없었다. 전화기 옆 메모지는 광고지나 이면지를 잘라서 쓰고 있었고, 벽장에는 슈퍼마켓에서 시장 보고 난 종이 봉투, 노끈 등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우리가 사용한 방 옷장 서랍을 열어보니 수건들이 차곡차곡 개어져 비닐 봉지에 넣어져 있는 등 정리정돈이 빈틈 없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벌써 주위 청소가 다 되어 있었고,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봐도 쓰레기를 버린 곳이 없었다. 근검ㆍ절약 정리ㆍ정돈하는 정신과 마음 자세를 보고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겠구나 그렇게 느꼈다.
또 회의장은 나고야교구의 피정센터였는데 최신 통역시설을 갖춘 회의실과 식당, 숙소, 세탁기, 통신시설 등 모든 현대적 사무통신 설비를 가진 완벽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회의 진행을 위해 도우러 나온 부부들이 일사불란하게 소리없이 착착 회의가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식사에서 청소까지 모든 것을 ME 부부들이 직접 준비해서 봉사하는데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만약 우리 한국서 이런 회의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북적대며 여기저기서 큰 소리가 들리고, 이리저리 뛰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까 연상해 보면서 효율적인 회의의 운용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여름에는 싱가폴에서 아시아 회의가 있었는데 싱가폴 대주교께서 기증한 피정의 집(ME 하우스)에서 회의를 가졌다. 먼저 민박 부부의 가정을 살펴보면 일남 일녀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ME 가족이었다. 남편은 자영 무역회사 사장이었고, 부인은 큰 병원 수간호사였다. 부인이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남편이 빨래ㆍ청소 등 거의 모든 가사를 처리하고 있었다. 식사는 일본과 달리 거의 외식이었다. 아주 값 싸고 맛있는 동네 식당에서 해결하는 것이었다. 거리가 깨끗하여 물었더니 국가 목표가「클린 앤드 그린」(Clean & Green) 이라고 했다. 쓰레기를 버려도 벌금이요, 자동차가 매연을 뿜으면 엄청난 벌금이요, 껌은 아예 씹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를 안내하던 민박 부부가 우리나라는「파인 컨트리」(fine country:좋은 나라) 인 동시에「파인 컨트리」(fine country:벌금 나라) 라고 했다. fine의 뜻에「좋다」는 뜻과「벌금」이라는 두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깨끗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그만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또 회의장 운영도 일본 못지 않게 ME 부부들이 소리없이 보이지 않게 일을 처리해 놓아 누군가 농담으로「고스트」(귀신)가 해 놓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능률 있는 사회, 책임을 다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게, 소리나지 않게 봉사하는 부부들의 모습은 선진국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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