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느닷없는 딸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온 가족이 함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새로 생겼다는 노래방이라는 곳을 가본 일이 있다. 새로 지은 건물에 깔끔한 실내장식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전에는 어쩌다 거리에서 노래방 간판을 보면 어떤 곳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를 않았지만 차츰 그 숫자가 불어나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간다는 얘기를 듣고부터는 참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
청중도 없는 비좁은 방에 들어가 혼자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아무래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불량 청소년이나 할 일 없는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불건전한 장소쯤으로 여겨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그날 처음 가 본 노래방은 나에게 놀라움과 함께 여러가지 느낌들을 안겨 주었다. 밖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와있는 데에 우선 놀랐고 그들 대부분이 혼자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각 방의 출입문 쪽 벽면을 대형 유리로 막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방마다에는 많게는 10명이 넘는 단체에서부터 적어도 3~4명씩은 되는 사람들이 어울려 희희낙낙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방음시설이 잘 되어서인지 유리창을 통해 보는 그곳의 정경은 마치 소리를 완전히 줄여 화면만 보이게 한 여러 대의 텔레비전을 한꺼번에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의 하나가 음악감상실이었다. 당시 서울의 중심가인 무교동 부근에는「쎄시봉」이니, 「르네상스」니 하는 유명한 음악감상실이 있어서 그곳에 가면 젊음의 낭만과 고뇌를 만끽할 수 있었다. 시내 일반 다방보다 약간 비싼 돈을 내고 차 한 잔만 마시면 하루 종일 시간제한이 없었으므로 아침에 들어가 저녁까지 점심도 거른 채 아예 그곳에서 사는 이들도 많았다. 푹신한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고 눈을 감은 채 음악 속에 빠져드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마치 유명한 지휘자라도 된 듯 두 팔과 온몸을 격렬히 흔들어대며 멋진 지휘를 하는 괴짜들도 언제나 한둘씩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유행이 바뀌면서 서울의 명소였던 음악감상실도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새로 생기는 다방마다 성능이 좋은 전축과 스피커를 들여놓고「디제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면서 구식 음악감상실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디제이」들이 한창 인기를 누리던 80년대까지만 해도「듣는 음악」「감상하는 음악」의 시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90년대로 들어서면서「부르는 음악」「참여하는 음악」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노래방에 가보고 비로소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노래를 듣고 감상하는 세상에서 직접 부르고 참여하는 세상으로의 변화는 보다 적극적이고 행동적인 발상의 전환이라는 의미에서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버스나 택시 안에서 식당이나 다방, 거리에서까지 노래소리에 고문당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차라리 노래를 부르는 편이 훨씬 나은 게 아닌지.
전통의 측면에서 보아도 본래 우리는 노래를 듣기 보다는 부르는 민족이었다. 「위서(魏書)」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부여(夫餘)초에, 『길을 다닐 때는 밤이나 낮이나 늙은이 젊은이 가릴 것 없이 모두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行道 書夜無老幼 歌 通聲不絶)』고 한 대목이 있다. 지금부터 약 1천7백년 전의 이야기이다. 아득한 옛날, 밤낮으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가 흘러넘치던 그 때를 생각해본다.
이것으로 보아도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노래를 듣고 감상하기 보다는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가족들과 함께 처음 동네 노래방에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그 후 몇 차례인가 더 비슷한 곳을 찾을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가까운 친구들과 어울린 술좌석 뒤끝이라 문 닫는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었지만 평소에 노래라면 꽁무니 빼기에 바빴던 친구까지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그런대로 괜찮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노래방 유행이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옛날처럼 사람들이 함게 어울려 노래를 부르게 된다면 그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입을 모아 부르는 우리의 노래 소리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다면 각박하고 살벌한 이 세상도 얼마쯤 더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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