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일이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내가 보기에 거인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고 감동했고 존경했다. 하루는 방과 후에 나를 부르시더니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선생님의 친구분이 마침 내가 살던 집 근처인 것을 아시고 얼마 전 꾸어주신 것이라며 돈을 봉투에 넣어『잘 전해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그분도 같은 심부름을 시킬 테니까 잘 가지고 오너라』고 하셨다. 그때 어린 생각에『그렇다면 더 많이 빌리신 분이 나머지만 보내시면 되잖아요?』하고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아니다. 그 친구와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란다. 나와 그 친구하고는 계산하는 사이가 아니란다. 내가 도와준 것이나 그 친구가 나를 도와준 사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란다』하셨다. 난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고 그 후 이십여 년이 지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그 선생님의 얼굴이 생각났고 까맣게 잊었던 그 일이 생각나며 내 심장을 울렸다.『아하! 그랬구나! 그게 사랑하는 비결이었어』하고 나는 소리치게 되었다. 나는 우선 그 선생님을 통해서 나를 가르치신 주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때는 이해할 능력이 내게 없었지만 기억력을 통하여 지금까지도 일하고 계신 주님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다. 왜냐하면 집착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엄마의 사랑이 제일 큰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시큰둥하게 들리는 이유는 엄마의 사랑이 집착에 근거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엄마의 사랑에 종속된 사람은 대개 미성숙한 유아기적 사고에 머물기 쉽고 집착이 강하게 마련이며 그럴수록 그들이 맺는 관계는 계산적이라는 점을 관찰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집착은 이기심의 동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랑은 집착이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다만 이유없는 친밀함이다.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열려있는 것이다. 어디에론가 향하여 있는 것이다.
나의 선생님의 우정이 참 사랑에 가까운 것은 그런 뜻에서일 것 같다. 서로 빚진 것이 흉이 아니고 빚질 만큼 곤란한 어떤 때에 서로 도움이 되었다는 자부심과 고마움과 존경심이 있다. 그분들은 우정이라는 사랑을 나누는 중에 서로 성장해갔을 것이다. 그래서 내 눈에 비친 나의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거인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한상만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그리스도성혈흠숭수녀회 김희경 수녀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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