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심상태 신부)가 주최한 92년도 제2차 가을 학술회의가 11월 11일 오후 1시 30분 가톨릭 교리신학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지난 5월 20일 창립기념 학술회의에 이어 두번째로 가진 이번 학술회의는「토착화 선구자들의 사상」을 주제로 천주교, 개신교회 초기 선구자들의 토착화 사상을 조명했으며, 윤민구 신부(수원가톨릭대학 교수)가「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토착화사상」을 변선환 목사(전 감신대학장)가「탁사 최병헌목사의 토착화사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다음은 윤민구 신부의 주제발표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정하상(1795~1839)은 신유박해로 인해 쓰러져 가던 조선 천주교회의 부흥을 위해 신명을 바쳐 일했던 분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인물이며 김대건 신부와 함께 103위 한국 성인의 대표이다.
그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함에 있어 사료가 넉넉한 것은 아니다. 관변측 사료로는 추안급국안, 승정원일기, 일성록, 조선왕조실록이 있고 교회측 사료로는 샤를러 달레(1829~1878)의 한국 천주교회사와 시성조서, 그리고 기해일기가 있으며 저서로는 상재상서가 있다. 상재상서(上宰相書)의 친저성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내용으로 보나 다른 사료들을 참조하여 보나 정하상의 글임에 틀림없다.
정하상의 생애를 위의 사료들을 근거로 살펴볼때 정하상은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충분히 받았을뿐 아니라 학문연구에서도 열중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천주교 부흥운동을 위하여 크게 노력한 분이다.
부흥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자신이 신도들의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지만 성직자들을 영입하고 신학생들을 선발하고 또 자신의 신품공부를 하는 등 사제직과 연관하여 노력하였다. 그것은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전달해주는 방법중 매우 중요한 것이 성사임을 알았기 때문에 취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정하상은 1839년 9월 22일에 서소문밖에서 참수치명 당하였다.
정하상의 사상을 살펴봄에 있어 먼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순교자라는 사실이다. 순교는 다음 몇가지를 생각하도록 한다. 첫째 순교를 단순히 극단적인 박해의 결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순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시앙인, 신앙의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 증거자가 순교자가 될수 있는 것이지 순교자이기 때문에 증거자가 되는것은 아니다.
둘째 예수께 대한 제자들의 추종원칙은 동상화(同像化)이다. 순교를 단순한 영광스러운 비극으로 볼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와 결부시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셋째 그러므로 순교는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선택이고 노력과 인간적 결의의 열매이다. 또한 하느님의 선물이고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지의 공동작업인 것이다.
정하상의 사상을 살펴보면 그는 결코 현실도피적인 인물도, 개인 구원만을 주장하는 광신자도 아니다. 천주교를 통하여 새로운 인간관과 사회관을 정립하여 민족의 구원을 이루려고 노력한 분이며 이를 위해 스스로 사회제도의 한계를 초월하며 생활하였고 나눔의 삶, 용서의 삶을 모범적으로 살았다.
정하상은 또한 하느님을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재자이신 분으로, 아버지이신 분으로, 인간역사에 현존하시는 분으로 그리고 상선벌악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믿고 따르고 있으며 성사를 통해 하느님과의 만남과 사귐을 강조하며 하느님께 대한 신덕, 망턱, 애덕을 더해 나갔을뿐 아니라 청빈 순명 정결의 복음삼덕을 실천하였다.
또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셨고 그래서, 교회는 인류의 역사가 끝날때까지 세상 어디서나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정하상자신이 바로 이러한 증인이 되었다.
그는 창조주이시고 주재자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기 위한 인간의 도리를 모두가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교에 열성적이었고, 그 결과로 개인, 집안, 나라, 전세계가 제자리를 잡고 평화롭게 살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생을 선교에 바쳤을뿐 아니라 용의주도하고 의연하게 자신의 죽음을 맞아들여 상재상서를 씀으로 해서 마지막 순간도 놓치지 않고 선교로 장식했던 것이다.
조선 천추교 부흥운동의 주역으로 1810년래 후반부터 1839년까지 활동하며 한국천주교회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하상에 대한 기록은 유감스럽게도 그리 많지가 못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사료도 그 사료의 성격때문에 정하상의 생애와 사상을 밝혀내기에 미흡하다.
정하상의 토착화사상을 밝혀내는데는 한계가 많으나 그가 보유론(補儒論)의 입장을 수용하였다는 것과 상재상서에는 토착화적인 표현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정하상은 상재상서를 저술할만큼 학식이 풍부한 신학자이자 호교론자였으며, 전 생애를 천주교회 전파를 위해 애쓴 선교사였다. 또한 천주교를 통한 민족의 구원을 위해 노력한 분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이 닦아야 할 덕을 실천하며 살았던 영성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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