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순교자 성월은 예년과는 좀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순교자 성월의 의의나 중요성이 해에 따라 다를 리 없겠지만 금년은 우리 103위 순교자들이 시성된 지 1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시성과 순교자 성월의 연관성을 한 번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우리는 10년 전 5월 6일의 여의도 광장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날 1백만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시성식에서 103명의 한국 성인들이 탄생되던 그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TV 중계된 그날의「이벤트」는 한국 가톨릭이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날 그 자리에서 세계를 통틀어 4번째로 많은 성인을 갖게 된 것을 크나큰 영광이며 자랑으로 여겼다. 한국의 천주교 신자인 것을 뽐내고 싶었고 실제로 많은 비가톨릭인들이 선망과 부러움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때 우리는 자랑스런 순교 성인들의 후손이 된 것을 참으로 고맙게 여기고 선조들의 뒤를 이어 이 땅에 선교 3세기를 힘차게 열어가는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될 것을 다짐했었다. 또한 우리는 오로지 신앙을 위해 그 어떤 시련이나 유혹이나 죽음까지도 기꺼이 참고 내던질 수 있었던 그들의 모범을 다르기로 결심도 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0년이 흐르는 사이에 우리의 상황은 어떻게 바뀌어져 있는가? 과연 그때의 그 감격, 그 결심, 그 다짐대로 우리 각자가, 우리 한국 교회가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 한국 교회는 그때를 고비로 교세 증가가 매년 둔화돼오고 있다. 교회의 이미지도 많이 변색되고 구도자들의 발길도 크게 떨어졌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냉담자나 행불자의 수가 조금도 줄지 않고 수계자 수는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신앙의 위기라고 표현할 만큼 심각한 현상들도 발견되고 있고 이대로 가다간 언제 좌초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리 교회가 10년 전과 비교해 이처럼 퇴보적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얽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 원인은 우리의 선조 신앙인들의 삶과 영성을 너무나 빨리,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있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시성 10주년을 맞는 금년 순교자 성월은 우리가 10년 전 성인들이 탄생되던 그날의 감격과 환희와 자부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다는 것이다. 단지 아련한 추억으로서 그날을 회상할 것이 아니라 그날의 그 뜨거움과 열정과 빛남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될 수 있기 위해 우리의 순교 선조들의 전구와 도우심을 간청하는 순교자 성월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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